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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대구의 김 선생님께 / 김보협

등록 2017-05-14 18:32수정 2017-05-14 19:40

김보협
디지털 에디터

김 선생님, 우리 아직 만난 적은 없지요? 술 한잔 주고받을 기회도 없었는데 문자 몇번으로 세상이 달라진 기쁨과 한켠의 허탈함을 나눌 정도는 됐네요. 오늘 생일입니다. 이젠 제 몸의 일부가 돼버린 <한겨레>의 생일입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신문다운 신문 하나 만들어보자는 선배 언론인들이 먼저 나서고 6만여명의 시민들이 돈을 모아주신 덕분에 지구별 위에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언론사가 태어났습니다.

곧 서른 살이 되는 한겨레에서 만 20년을 일했다고 오늘 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기쁘지 않습니다. 민주정부 3기를 열게 된 출발점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의 중심에 한겨레가 서 있던 지난해 가을이나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춥지 않았던 촛불광장의 겨울에 생일을 맞았다면 달랐을 겁니다. 한겨레에 지지와 성원이 이어졌으니까요. 그런데 대선을 지나면서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김 선생님도 잘 아시겠지만, 지난 30년 주요 격변기마다 ‘한겨레, 너는 누구 편이냐’는 질문에 시달렸습니다. 우리는 늘 “사실과 진실의 편,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편, 사회적 약자의 편”이라고 말해왔는데, 요샌 저희의 진심을 믿지 않거나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분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기는 늘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다시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불미스런 사건들도 불거졌습니다.

김 선생님, 많은 분이 비판하고 서운하다고 등을 돌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실시간 흘러가는 뉴스를 잡아서 취재하고 기사 쓰고 편집해서 내보내는 과정 모두가 사람의 일인데 왜 실수가 없겠습니까. 기사 하나의 어떤 표현을, 혹은 사진 하나를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유불리에 맞춰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누구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보도한다는 비판은 좀 과한 것 같습니다. 도서관에서 최근 한달치 한겨레를 꼼꼼히 본 뒤에 오해가 풀렸다는 분도 있고, 여론조사 등 몇몇 상징적인 보도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듣고는 왜 그런 얘기를 지면을 통해 하지 않느냐는 분들도 만났습니다. 한겨레 사외 창간위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언급하며 ‘문재인 신문’을 만들라고 하는 주문에는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한겨레에서 뉴스를 다루는 사람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에 말씀드린 한겨레의 가치와 언론의 역할을 늘 고민하며 일하고 있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대선이 끝나면 좀 나아지리라 여겼는데 유시민 작가가 한겨레티브이(TV)의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서 한 발언이 화제가 되는 것을 보니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공존하기 힘든 세 단어가 합쳐진 ‘진보어용지식인’이 되겠다는 진의를 맥락상으로, 그리고 한때 언론에 몸담았던 그분의 역사에 비춰 보면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한겨레도 “같이 어용하자”라는 제안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전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당부로 이해합니다. 그분이 진보와 지식인은 버리고 어용만 취한다면 누구보다 더 날 선 비판을 할 테니까요.

김 선생님, 이제 저와 제 일부인 한겨레를 이해하신다면 청와대에서 전화 오거든 사양 말고 가라는 그 말씀은 거두시지요. 그분들도 사람 보는 안목이 있거니와 저도 할 줄 아는 일과 그렇지 못한 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할 정도는 되거든요. 저는 개혁과 민생을 표방하는 새 정부가 성공하고 그 이후에도 민주정부가 이어질 수 있도록 제가 서 있는 곳에서 제 나름의 길을 찾겠습니다. 조만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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