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디터 요즘 때아닌 인사를 받는다. “러닝 개런티도 받냐”는 우스갯소리도 듣는다. 25일 개봉한 다큐영화 <노무현입니다> 출연 덕분이다. 내 역할은 관찰자다. 정치부 기자로 2002년 민주당 국민참여 경선을 평가·복기하는 것이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오래 지켜봤기에 ‘2%도 안 되는 지지율로 어떻게 대통령이 되겠냐’는 질문을 던졌다가 “낸들 어쩌란 말이오. 개혁한다는 386 의원들도 날 안 도와주는데. 옆엔 고작 유시민 하나인데…”라며 호통을 당한 일 등 깨알같은 뒷얘기도 했지만 다 잘렸다. 내 얘기가 아니라도 영화는 인간 노무현을 잘 포착했다. 특히 변호사 노무현을 감시하다 그에게 감화된 중앙정보부 요원 이화춘의 이야기는 울림이 있다. 정보기관의 사찰 대상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취임과 동시에 국정원 개혁을 부르짖었다. 정치정보 수집을 금지했고, 국정원장 독대 보고도 거부했다. 민변 회장 출신 고영구 변호사를 국정원장에 기용했고, 서동만 교수를 기조실장에 앉혀 조직과 예산에 대한 수술도 시도했다. 임기말엔 국정원 기조실장 출신 김만복을 원장에 임명했다. 국정원은 개혁됐고, 더이상 일탈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국정원은 9년 만에 다시 수술대에 올라왔다. 이번엔 참여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고강도 개혁을 벼르고 있다. 서훈 원장을 ‘집도의’로 선택했다. 28년간 국정원에 근무해 내부에 정통하고 대통령의 개혁철학을 잘 안다는 이유에서다. 서훈 원장이 정말 국정원을 개혁할 수 있을까. 아직은 미심쩍다. 인사청문회에서 보인 그의 인식 때문이다. 국내 정치와 단절을 약속했지만, 그는 국정원의 이해에 충실했다. 문 대통령은 국내 정보수집 업무 전면폐지를 공약했는데, “선거개입, 민간인 사찰 이런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취지의 표현”이라며 선별 개선을 얘기했다. 경찰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신설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이관하는 공약에도 “대공수사를 가장 잘할 수 있는 기관은 국정원”이라며 “대공수사력 약화를 용납하기 어렵다”고 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일단 오빠 한번 믿어봐’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로 국정원은 바뀌지 않는다. 적당히 숙이는 척할 뿐이다. 대통령이 국정원장을 한차례도 독대하지 않은 참여정부에서도 국정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통령 의지에 맞춰 적당히 조직을 바꾸고, 내부 감찰 기능을 강화하는 등 변신의 몸짓을 보였을 뿐이다. 국정원 직원들은 쉼없이 정치정보를 수집했다. 청와대, 여의도 정보에 특히 목말라했다. 청와대 출입기자인 나를 찾아와 “대통령이 원장 독대를 금한 채 우리가 수집한 정보를 안 쓰니 참여정부가 이 모양”이라 했고, “‘예전엔 우리가 장관을 찾아가 한마디만 해도 대통령 과제를 실현할 드림팀을 꾸렸는데, 우리를 부처 출입도 못하게 하니 장관들이 안 움직인다”고 말하는 직원도 많았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자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난 9년 동안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이명박 정부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바람잡이 노릇을 했다는 의심을 사고, ‘댓글 부대’로 선거에 개입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셀프개혁’을 자처하며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 작성 등에 관여한 의혹을 받았다. 참여정부에서 국정원 개혁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사는 “국정원은 운용이 아니라 제도로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장과 국정원의 선의를 믿고 그들의 권한을 빼앗고 분산시키는 제도개혁을 게을리하면 그들은 언제든 ‘악마의 발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지난 9년간 국정원에 충분히 속고 당했다. 그냥 국정원 개혁 공약을 강제해야 한다.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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