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행복팀 선임기자 디지털 온라인 시대는 과학의 풍경도 많이 바꾸어놓았다. 큰 변화를 꼽으라면, 나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온라인 학술저널과 공개 정보가 크게 늘어난 점, 그리고 연구 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된 뒤에 익명의 온라인 사후심사가 활발해진 점을 들겠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라 주로 영어권의 얘기다. 온라인 학술지의 확산은 실로 놀랍다. 그동안 흔들림 없는 권위를 지켜온 여러 과학저널도 이젠 실제적인 위협을 느낄 만하다. 2003년 ‘과학지식을 공공자원으로, 무료 과학저널 진지한 시도’라는 제목의 과학칼럼을 읽으면서 공개접근(오픈 액세스)이니 온라인 저널이니 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처음 알게 됐는데, 강산이 두 차례 변할 만한 시간이 흐른 지금 온라인 저널은 도전이 아니라 추세로 자리잡았다. 온라인 저널이 늘면서 부작용도 나타났다. 엄격한 사전심사를 생략한 논문도 늘어났고 학문 소통보다 논문 심사료나 게재료에 눈독을 들이는 이른바 ‘약탈적’ 저널들은 요주의 대상이 됐다. 그렇더라도 믿음직한 온라인 저널들은 더 늘어날 테고, 과학 논문은 더 다채로워지고 빨라지고 많아질 것이다. 20세기에 없던 또 다른 변화는 익명의 사후심사가 활발해진 점이다. 학술지에 발표된 이후에도 논문의 심사는 끝나지 않는다. 지구 반대쪽 실험실에서 논문 결과를 재현하려는 실험이 벌어지고 집단지성의 평가는 신속하게 공유될 수 있다. 이런 풍경은 우리도 일찍이 경험한 바 있다. 황우석 전 교수 연구진의 인간 배아 줄기세포 논문이 조작됐음을 밝혀낸 것은 국내 익명 전문가들이었다. 2014년 혁신적인 줄기세포 기술로 떠들썩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스태프’(STAP) 세포 논문에서 조작을 찾아낸 것은 일본의 익명 연구자들 덕분이었다. 이런 익명의 사후심사를 상징하는 곳이 ‘퍼브피어’(pubpeer.com)이다. 2012년 출범한 이곳에선 각지 전문가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문제 있는 논문들에 관해 말하고 토론한다. 이미지와 데이터 조작이나 오남용, 또는 표절을 찾아내기도 하고 논문 평을 두루 나누기도 한다. 논문 저자가 해명에 나서기도 한다. 물론 익명의 사후심사도 부작용 논란을 낳았다. 작은 실수가 공론장에서 부풀려져 연구 의욕을 위축시키거나 악의나 의도를 숨긴 비판도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었다. 익명 사용자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소송이 이어지기도 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퍼브피어는 어느덧 제도권 바깥의 사실상 제도로 안착하는 모양새다. 며칠 전 ‘퍼브피어 2.0’을 선언하며 새단장까지 했다. 익명성은 오히려 강화했다. 퍼브피어 책임자는 온라인 매체 <리트랙션 워치> 인터뷰에서, 익명성이 부작용도 낳지만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어 검증의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강조한다. 경제적인 이득도 있다. 많은 연구가 국민 세금으로 이뤄지는데, 논문의 오류를 찾아낸다면 잘못된 논문을 뒤따를 후속 연구를 막을 수 있기에 연구 낭비를 줄인다는 것이다. 온라인 저널이나 공론장의 사후심사는 모두 ‘과학 지식은 공공자산’이라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사후심사는 공공자산인 과학 지식의 오류를 줄여 건강한 과학의 신뢰를 높인다. 퍼브피어는 작지만 매서운 과학의 파수꾼 구실을 해내는 셈이다. 디지털과 과학기술 신흥강국으로 꼽히는 우리나라에서 과학 지식의 공공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한참 뒤진 건 안타깝다. 아니, 거창한 기대 이전에 연구윤리 논란의 조사와 처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제도라도 안착하면 좋겠다. 연구윤리 논란은 떠들썩하지만 처리 과정과 결과를 자세히 알기 어렵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건 디지털 온라인 시대에 민망한 일이다.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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