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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문학이라는 집

등록 2017-06-29 18:16수정 2017-06-29 20:58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네모난 감옥에 갇힌 사람과 갇히지 않은 사람이 나란히 있다. 한자 ‘수인’(囚人) 얘기다. 같은 뜻으로 더 흔히 쓰이는 ‘죄수’(罪囚)와 달리 이 말에서는 어쩐지 죄의 느낌은 덜하고 갇힌 ‘인간’이라는 어감이 도드라진다. 최근 출간된 작가 황석영의 자전 에세이 <수인>을 읽으며 든 상념이다.

<수인>은 작가의 유년기부터 5년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1998년까지 반세기 남짓한 삶을 회고한 기록이다. 두권 합쳐 1000쪽에 육박하는 이 두툼한 책은 크게 보아 여섯개의 ‘감옥’ 장과 옥에 갇히기 전을 다룬 여덟 장으로 나뉜다. 갇힌 인간 ‘수’(囚)와 자유로운 인간 ‘인’(人)이 나란한 제목이 어쩐지 책의 이런 구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분단이라는) 경계를 어떻게 해서든 넘어서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작가도 뭣도 아니었다”라고 황석영은 <수인> 초반부에 쓴다. 광주항쟁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내고 독일과 미국을 거쳐 일본에 머물던 1985, 6년 무렵이었고, 1989년에 실현될 북한 방문 계획이 서기 전이었다. 그가 넘어서려는 경계가 반드시 휴전선으로 상징되는 분단만도 아니었을 테다. 휴전선 너머 금단의 땅을 밟기 전에도 그는 자신과 우리 사회를 옥죄던 숱한 금기와 규제에 온몸을 던져 맞섰다.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를 목숨처럼 챙겨야 하는 작가로서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하다고는 해도 그것은 또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피치 못할 상처를 안기는 일이기도 했다. <수인> 앞머리에는 “어머니 영전에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헌사가 적혔는데, 적어도 성장기의 그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금기와 억압을 대리하는 존재였고 그는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면서 상처를 주고 또 받았다. 그는 수시로 집을 뛰쳐나가 노숙을 하거나 일용직 노동자로 떠돌거나 머리를 깎고 절에 귀의하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그녀(=어머니)는 고해와 같은 세상 속으로 내던져진 나를 찾아서 곳곳을 헤매고 다녔다.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때도 그녀는 언제나 어느 곳에나 나를 찾아서 먼길을 오곤 했다.”

세상 속을 헤매던 그를 끝끝내 찾아온 것이 어머니만은 아니었다. 16일 열린 출판 기념 모임에서 평론가 염무웅은 “황석영이 성장기에 어머니와 밀당을 했다면, 다른 한쪽에는 문학과의 밀당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문화운동에 통일운동까지 갖가지 사회 활동으로 분주했음에도 어디까지나 문학이라는 중심을 놓지 않았음을 가리킨 말이었다. <수인> 2권 뒷부분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결국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문학이라는 집이었다. 세상의 뒤안길을 떠돌며 노심초사하다가도 퍼뜩 정신이 들면 나는 늘 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구축돼온 황석영 문학의 독자에게 <수인>은 귀한 선물이 될 법하다. “몰개월은 세상의 막장 끝까지 몰린 사내와 계집 들이 함께 무너져가다가 되살아나는 그런 동네였다”라든가 “‘객지’는 전태일의 죽음에 강한 인상과 영향을 받은 작품이었다” 같은 대목, 또는 <장길산>을 연재하다가 펑크 낸 그를 잡고자 당시 신문사 문화부 막내 기자였던 김훈이 시내를 뒤지고 다녔다는 식의 일화를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이태준, 박태원, 홍명희 같은 작가들의 월북 이후 삶에 대한 증언도 소중하고, 동료 문인과 문화인 등 각계 인사들과 얽힌 이야기도 재미지다. 그 무엇에도 갇히지 않으려는 도저한 자유 정신, 비상한 기억력, 그리고 구수한 입담이 어우러져 그려낸 한 인간과 시대의 초상이 흥미진진하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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