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에디터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지난 4일 아침 서울 지하철 풍경. 스마트폰 위 사람들의 눈길이 머무는 뉴스는 북한 미사일 발사가 아닌, 송혜교-송중기 ‘송송커플’의 결혼 발표였다. 북한의 도발은 이제 너무 자주 반복되는, 지겹고 뻔한 뉴스가 됐다. 북한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때마다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 결의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시간이 좀 지나면 중국이 북한을 제대로 압박하고 있는지를 둘러싼 공방전이 벌어지고, 북한의 또다른 도발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이 도돌이표의 핵심에 ‘중국 역할론’이 있다. 북한 원유·식량 공급과 무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하면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할 것이라는 처방전이다. 북핵 문제는 북-미 대립 구도에서 싹텄으나, 2002년 2차 북핵 위기 이후 미국은 6자회담 등을 통해 중국을 중재자로 끌어들였고,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거치며 북핵 문제는 아예 중국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변해버렸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북핵 해결 없이는 대화도 없다’며 남북한 대화 창구를 모두 막아버렸고, 북핵 문제 해결은 모두에게 ‘남이 해야 할 숙제’가 됐다. 북핵 문제를 우선 과제로 해결하겠다던 트럼프 행정부도 다시 ‘중국역할론’으로 되돌아갈 조짐이다. 4월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이후 짧았던 미-중 허니문 기간은 끝나고, 미국 정부는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와 남중국해에서 미 해군 작전, 미국·일본·인도의 대규모 합동 해상 훈련, 중국을 최악 등급 인신매매 지원국으로 지정 등 중국 압박 종합선물세트를 내놓고 있다. 다음 카드로는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은행, 기업들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이란 강력한 칼을 빼들면, 중국이 무릎을 꿇고 북핵 해결에 나설까? 중국은 러시아와 손잡고, 북한 정권 붕괴나 불안정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을 더욱 굳히며, 미국과 힘겨루기에 나설 것이다.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의 곤경은 심해지고, 한-중 관계는 더욱 악화하고, 사드 경제보복을 풀 실마리 찾기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중국 역할론’은 또다시 한·미·일-북·중·러의 대립 구도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쐐기 역할을 할 것이다. “미국과 함께 세컨더리 보이콧을 협의중”이라는 강경화 외교장관의 발언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과 최대한의 대화’ 원칙에 합의했다지만, ‘최대한’에 대한 해석은 천차만별이다. 북한 미사일 문제를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해법으로 풀자는 제안이 많지만, 방점도 제각각이다. 강경파들은 미국이 당시처럼 핵전쟁 위험도 불사해야 상대편을 물러서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에선 3차대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결국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비밀전문을 보내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미국이 쿠바 정권 유지를 보장하고 봉쇄를 풀고, 소련은 미사일 기지 폐쇄와 무기 철수에 나서는 양보로 위기를 벗어난 교훈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평화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한다는 베를린 구상의 첫걸음은 과감해야 한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밝혔던,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단을 전제로 한·미 연합훈련 규모의 축소를 미국과 협상해 대화의 물꼬를 트는 방안도 당연히 검토되어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송송커플이 사랑을 키우던 머나먼 우르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서 벌어지는 위기다. 남에게 떠맡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결코 아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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