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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 김보협

등록 2017-07-16 18:08수정 2017-07-16 19:26

김보협
디지털 에디터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당황하거나 황당한 적이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 유치원 선생님에게 처음 “아버니임~”이라 불렸던 날을 잊지 못한다. 깜짝 놀라 “저요?”라고 되묻기까지 했으니까. ‘○○○ 아버님’에서 아이 이름이 생략된 것임을 깨달은 뒤에도 단박에 나이를 먹어버린 듯한 서글픈 느낌은 오래갔다. 최근 다섯 살 꼬마에게 “할아버지!”라고 불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즐겨 가는 밥집 사장님의 손녀였다. 장난감을 가지고 다가와 살갑게 굴어 방심하게 만들더니 ‘강펀치’를 날렸다. 흰머리가 검은 머리를 넘어섰으니 앞뒤 잴 것 없는 아이에게는 자연스런 호칭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당황스런 경험이었지만, 호칭 때문에 불쾌함을 넘어 삶 전체를 부정당하는 모욕 수준에 이른 사례들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평생 남을 위해서는 밥 한번 짓지 않았을 것 같은 여성 국회의원에게서 “밥하는 아줌마”로 격하된 급식·조리 노동자들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행사했다가 “미친×들”이 됐다. 운전이라는 노동을 제공받는 대가로 급여를 지급할 의무를 지는 고용주에게서 처음부터 끝까지 “새끼야!”로 불렸던 노동자들의 심경은 또 어땠을까.

노동자를 비하하고 욕설을 퍼부은 그들의 깊은 속내까지는 모르겠으나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그들에게선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밥 세 끼 먹고 산다고 다 같은 사람일 줄 알아?’ 식의 특권의식이 느껴진다. 대기업 임원 출신인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은 직업 정치인이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모친의 죽음을 언급한 적이 있다. 부친의 사업이 갑자기 망하는 바람에 모친이 병을 얻고도 숨겼고 그 병이 커져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는 자신의 과거를 전하면서 그런 억울하고 아픈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런 결심이 실제 의정활동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밥이나 하는 아줌마’들은 이 의원이 관심 쏟고 배려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나 보다. 결국, 한때 같은 당 동료였던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공천을 주고 당선까지 시킨 민주당에도 책임이 있다”며 사과하는 바람에 이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통째로 부정당하고 말았다.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는 기사들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부은 이장한 종근당 회장의 만행은 옛 운전기사들이 <한겨레>에 녹취파일을 건네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각각 6분, 8분쯤의 짧은 파일을 듣는 동안 나 자신이 오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이 회장은 운전기사들을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노동자가 아니라 종 다루듯 했다. 자신의 소유물인 종으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부모까지 들먹이며 함부로 ‘놈’ 자를 붙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들에겐 한없이 교양 있고 자상할 이 회장은, 차를 세우고 같이 쌍욕을 퍼부어주고 싶은 순간마다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이 어른거렸을 기사들의 심경을 알까.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기도 한 그는 흥분해서 욕설을 퍼붓는 와중에 “애비가 뭐 하는 놈인데 제대로 못 가르치는 거야?”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 말은 그대로 돌아와 이 회장 자신이 스스로 종근당 창업주인 부친을 욕보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장한 회장이나 이언주 의원은 잘못된 언행이 큰 파문을 일으키자 방송 카메라 앞에 나와 사과를 했다. 얼마만큼의 진심이 담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성경 구절이 있다. 성공한 기업인들로 지식과 교양을 갖춘 분들이니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겠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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