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행복팀 선임기자 현대 과학의 기록물인 <네이처>의 1950~2000년대 종이 발행물을 며칠 동안 메뚜기 뛰듯 들춰 보면서 광고물만을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다. 20세기 중반까지 <네이처>에 실린 광고물에선 당대 최고의 정확성, 정밀성을 강조하는 관측, 계측 도구가 자주 실렸다. 20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실험실 도구 광고물에서는 정제, 증폭, 분석 도구의 신속성, 대량성이 강조됐다. 2000년 3월 분자생물학 실험장비 광고문이 눈에 띈다. “게임의 법칙. 목표: 당신이 선택한 방법을 이용해 핵산의 서열과 길이, 양을 결정하는 것. 요건: 선택된 방법은 가격이 적정해야 하며 쓰기 쉽고 다기능이며 빨라야 한다. 방법: 유전자 분석 방법을 선택한다, 핵산을 분석한다, 결과를 검토한다. 승리: 가장 효율적으로 결과를 모으고 먼저 발표하는 사람이 게임에서 이긴다.” 과학자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이런 광고문을 보면,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과학하는 방식’은 독창적이면서도 빠르고 정확한 결과를 산출하는 경쟁으로 그려진다. 실험·연구 도구의 변화는 곧 실험·연구실 풍경도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근래엔 인공지능 알고리즘도 과학하는 방식을 확장하고 바꾸는 도구로 등장하고 있나보다. 요즘엔 인공지능을 활용한 여러 연구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얼마 전 생물학저널 <셀>에 실린 연구도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없다면 하기 힘든 결과물을 보여줘 눈길을 끈다(bit.ly/2tn5EPy).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갖가지 초파리 변이들의 행동거지를 관찰해, 그 행동과 연결되는 뇌의 특정 영역을 찾는 방식으로 초파리 뇌 지도를 작성한 연구 결과였다. 초파리 행동 패턴을 미리 학습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40만마리 초파리의 행동을 촬영한 2만편의 영상 자료를 분석해 미세한 행동거지 차이와 연관되는 뇌 활성 영역 차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과학저널 <사이언스>엔 인공지능 덕분에 가능해진 새로운 성격의 연구들을 모은 기획기사도 실렸다(bit.ly/2tl9I5W). 인공지능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 있는 자연어를 분석해 사회집단의 정신·육체 건강을 측정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폐증과 관련되는 유전자들의 상호작용 연결망을 추적하는 데에도 인공지능이 한몫할 수 있었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수많은 신호를 추려 어떤 천체를 찾아내는 일이나 화학반응을 예측하는 데에도 인공지능은 실력 발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인공지능이 주는 가장 두드러진 기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데이터 또는 신호를 추리고, 또한 신호 간의 연결망을 고려하면서 어떤 신호의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인 듯하다. 알파고가 보여주었듯이,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은 데이터 더미 속에서 패턴을 학습하며 능력을 키운다. 미국 기업 마이크로소프트는 2005년 과학자들을 모아 ‘2020년 과학’을 내다보는 토론 행사를 벌인 적이 있다. 나중에 보고서도 냈다(bit.ly/2kntl6h). 과학 활동에서 컴퓨터가 갈수록 중요한 기반이 되리라는 전망은 당시에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아직 2020년이 오지도 않았지만 계산, 모델링, 시뮬레이션, 인공지능이 이미 과학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도구임을 실감할 수 있다. 연구자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무수한 자료와 물음을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 말하는 연구자도 있고, 자연 현상을 최종 확인하는 실험을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연구자도 있듯이 전망은 엇갈린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과학하는 방식과 스타일을 어떻게 확장하며 어떻게 바꾸고 있는 중일까.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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