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디터 지난 몇주, 주말마다 봉변을 당하는 느낌이다. 토요일 하루 쉬는데, 꼭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다. “언제까지 기다릴 거야, 아직도 정부 말을 믿는 거야. 집값 떨어지는 날, 절대 없어.” “지난해 집 사자고 할 때, 떨어질 거라 장담했지. 그 집들, 지금 다 최소 1억원은 올랐어.” 아내의 닦달에 견디다 못해 1년여 만에 서울 시내 아파트 매입 전선에 뛰어든 요즘, 솔직히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4천만원을 더 달라네요. 그 이하로는 안 팔겠대요.” 공인중개사와 함께 집을 둘러보고, 처음 제시한 값에 사겠다고 하니 집주인은 덜컥 수천만원을 올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2주 전 주말이었다. 이런 일도 있다. 상투를 붙잡았다 집값이 떨어져 폭망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다. 그런데 진짜 폭삭 망할 것 같아 “몇백만원만 깎아주시면 곧바로 사겠다”고 했다. 30여분 뒤 “그 집은 매매 완료됐다”는 답이 왔다. 몇시간 뒤 같은 단지, 같은 평수인데도, 3천만원 더 비싼 집들이 매물로 올라온다. 한 채만 팔리면, 다른 집주인들은 그보다 몇천만원씩 올려 집을 내놓는다. 이쯤 되니, 두렵다. 후회가 밀려왔다. “‘집값을 꼭 안정시키겠다’는 정부 말을 아직도 믿냐, 그렇게 당하고도….” ‘부동산 불패’를 확신하는 사람들의 타박에 아랑곳 않고, 정부 말을 믿은 게 바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꼭 이명박·박근혜 정부 탓일까? 멀리 볼 것도 없다. ‘집값 안정, 투기 수요 근절’을 장담한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첫 부동산 대책인 ‘6·19 대책’도, 시장은 그냥 무시한다. 한국감정원 발표에 따르면 7월 셋째 주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보다 0.17% 올라, 6·19 대책 이전 수준(6월 둘째 주 0.18%)을 회복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집값은 43개월째 상승했고, 3.3㎡(1평)당 가격이 처음으로 2천만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수십억원 하는 강남 아파트는 남의 얘기라고 치자. 서울 강북 지역의 33평형(공급면적 106㎡/전용면적 84㎡) 아파트도 웬만하면 7억원을 넘는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이런 집을 살까. 통계청이 올해 초 발표한 도시근로자 4인 가구 월평균 소득은 563만275원이다. 4인 가족이 한 푼 안 쓰고 모아도, 10년은 걸리는데…. 그런데도 집값은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른다. 정부 대책만 나오면, 잠시 안정됐다고 떠든다. 전주 대비 주택 가격 상승폭이 줄었다는 게 근거다. 허상이다. 주당 0.15% 오르던 게 0.1%로 줄었다며 정책의 약발이 들었다고 떠들지만, 그런 대책이 반복되는 사이 연간 1억원이 넘게 뛴다. 결국 남는 건 좌절감과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다. 문득, 참여정부 때 삼청동에서 청와대 핵심 인사와 앉아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당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총괄했다. 집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물었다. “노무현 정부가 정말 집값을 잡을 수 있냐”고. 그는 말했다. “모든 걸 다 걸고, 꼭 잡을 테니 집 사지 말라. 집 사면 바보 된다.” 그의 말을 들었다면 나는 지금 정말 바보가 됐을 게다. 정부는 기다리라고 한다. 8월에 가계부채와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지금도 주택보급률, 가계부채 등 통계 수치에 기댄 채 ‘집값 안정’ 대책을 궁리할 게다. 하지만 시장에선 “또 호구처럼, 당할 거냐”고 한다. 합리적 근거는 없다. 중개업자들은 “노무현 정부 때 폭등했으니, 문재인 정부에서도 오를 거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도시재생 사업을 공약했기 때문에 아파트 짓기가 더 어렵고, 그래서 더 오른다”고도 한다. 제발 이번엔 ‘대책’을 좀 내놓았으면 좋겠다. 하루라도 빨리,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해줬으면 좋겠다.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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