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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별똥별로 만들어 달라

등록 2017-08-07 18:32수정 2017-08-07 19:01

이명수
심리기획자

국방부에서 ‘공관병 갑질’ 긴급 대책회의를 했다는 보도를 보고 의아했다. 박찬주 대장 부부가 공관병을 사적 노예로 부린 사건은 ‘갑질’이 아니라 광범위한 인권침해이자 학대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다. 호감 가진 여자를 납치 감금해 놓고 수시로 성폭행한 행위를 애정이 좀 넘쳐난 남자의 갑질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과장인가. 아니다. 우리나라 군대에서 상관의 갑질은 갑질이 아니다. 그게 무엇이든 까라면 까야 한다. 거부권과 저항권이 원천봉쇄된 곳이라서다. 선택지가 없다.

그런 군대에서 장군은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신이다. 며칠 동안 냇가의 조약돌까지 앞뒤로 세척했는데 헬기를 타고 공중으로 지나갔다는 사단장 방문 일화는 밤하늘의 별만큼 많다. 남자들 사이에서 안줏거리처럼 왁자하게 공유되지만 그건 한 인간의 개별성이 완전하게 말살되었던 노예 경험에 대한 참담한 고백이다. 대한민국 성인 남자의 악몽 중 압도적 1위가 재입대하는 꿈이라는 건 다시 그런 노예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 공포가 얼마나 큰지를 반증한다.

박찬주는 군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육군 대장이다. 신 중의 신이다. 군인권센터에서 박찬주의 형사처벌을 요구하자 국방부는 ‘명예를 먹고 사는 군인이 스스로 전역 신청을 한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심한 처벌을 받은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번듯한 사회적 명함을 가진 이들의 인식은 대체로 그러하다. 감옥에 가야 할 죄를 지어도 자기의 사회적 명함을 내려놓으면 엄청난 결단인 양 그걸로 퉁치자 한다. 안 될 말이다. 지난해 박찬주는 국방장관으로부터 공관병에 대해 안 좋은 소리가 들리니 주의하라는 구두 경고를 받았다. 그 말을 듣고 부인과 ‘우리가 조심하자’고 다짐까지 했단다. 그럼에도 이후 그들의 공관병 학대 행위는 고쳐지지 않았다. 신 같은 특혜에 인이 박여서다. 스스로는 못 고친다.

병사를 초코파이 하나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의 작전 책임 지역은 남한 면적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방대하다. 그래서 문제다. 자신의 병사들이 전쟁 같은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대장 박찬주는 어떤 선택을 할까. 모두 누군가의 아들일 병사들의 생명을 세심하게 고려한 작전 명령을 내릴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손목에 호출벨까지 채워가며 박찬주 부부가 공관병에게 시킨 일들은 한심하다. 물 가져와라, 과일 깎아라, 벌레가 나왔다, 발톱을 치워라. 병들지 않았다면 누구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다. 남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명함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그런 일에 남의 손을 빌린다. 그런 걸 의전이나 권위로 착각한다. 국군 최고사령관인 대통령도 자기 옷은 자기 손으로 벗어서 거는 시대다. 일개 대장 부부 따위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군에 입대한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자기 집 머슴처럼 부리는 게 어떻게 온당한가. 벌받을 짓이다.

박찬주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전역을 신청하면서 ‘지난 40년간 몸담아왔던 군에 누를 끼치고 군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자책감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라고 했다. 말 잘했다. 자신이 몸담았던 군의 명예와 신뢰 회복을 위해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자동전역으로 퉁치지 말고 스스로 형사처벌을 자처하기 바란다. 그래야 병사들을 자기 머슴 정도로만 생각하는 군 내 박찬주들의 적폐가 청산될 계기가 생긴다. 그런 게 대장의 진짜 명예다. 국방부는 병사들에게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군 개혁의 한 상징으로 대장 박찬주를 별똥별로 만들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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