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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최고의 ‘친미파’ 인재들 / 박민희

등록 2017-08-09 18:10수정 2017-08-09 21:18

박민희
국제 에디터

<뉴욕 타임스> 기자였던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쓴 <최고의 인재들>은 쟁쟁한 인물들이 모인 케네디 행정부가 왜 베트남 군사 개입이란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베트남전 패배라는 처절한 실패로 향하게 되었는지를 치밀하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핼버스탬은 정책 결정의 핵심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그 답을 찾는다.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딘 러스크 국무장관,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을 비롯해 ‘하버드 클럽’으로 불리던 이 대단한 엘리트들은 베트남의 역사와 정치를 이해하려 하지 않은 채 전쟁을 결정하고 승리를 단언한다. 그들은 아시아의 역사에는 관심이 없었고, 반공이란 개념으로만 오만한 전쟁을 벌였고 독립을 염원하는 베트남인들의 반식민 정서를 살피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했고 선택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른 선택에 대한 가능성의 문은 닫혀만 갔다.”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은 항상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인물들은 누구인가? 한국이 운전석에 앉아 대화와 교류로 평화로운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베를린 구상부터 사드 조기 추가 배치, 미사일 탄두 중량 확대, 핵잠수함 도입 방침까지 지난 한달 동안 급변침해온 외교정책을 우려의 눈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경쟁구도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한국의 외교 공간을 찾고, 때로는 미국에 대해서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외교부 출신 중심의 한-미 동맹파 세력이 운전대를 독점해 가고 있다. 외교부 내에서도 미국을 담당하는 ‘북미’ 라인이 아닌 이들은 여전히 소외돼 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중 혈맹관계”를 얘기했다는 청와대의 설명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상회담 자리에 중국 전문 외교관이 한명도 없었고 중국의 비동맹 정책에 대한 이해도 없었던 탓이다.

최근 만난 한 외교관은 “사드 추가 배치 결정은 한-중 관계는 당분간 포기하고 가자는 계산”이라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 전부터 미국으로부터 사드 배치에 대한 강한 압박이 있었고, 한국은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에 직접 위협이 되게 되면 사드를 배치한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잇따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자 더이상 미루기 힘들다고 보고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1992년 한-중 수교로 냉전구도에 금이 가고 한국 경제가 새 발전 공간을 마련했지만, 24일 수교 25주년을 맞이하는 한-중 관계는 기념행사를 공동 개최하지 못할 정도로 최악이다. 사드 위기를 넘긴다고 해도 이전과 같은 상태를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드는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의 핵심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고, 중국 경제구조의 변화로 한국 기업들의 설 자리도 좁아지고 있다.

달라진 미국에도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의 미국은 동맹을 존중하는 이전의 미국이 아니다. 대북 정책과 발언도 모순적이고 혼란스럽다. 어제는 국무장관이 북한과 대화를 얘기하고 다음날은 안보보좌관이 “예방전쟁”을 얘기하고, 그 다음날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화염과 분노”를 말한다. 내키지 않더라도, 북한과의 협상은 오판으로 인한 전쟁 위험을 줄이고 긴장을 낮추면서 해법을 만들어갈 첫 단추다. 이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하니, 제재 강화와 전쟁불사론, 중국 비난, ‘한반도 몇월 위기설’이 되풀이되며 문제만 악화되고 있다. 미국이 듣기 싫더라도 한국은 할 말을 하고 돌파구를 만들어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한-중 관계 리셋’도 필요하다. 대담하고 창의적인 외교 없이는 돌파할 수 없다. 최고의 ‘친미’ 인재들만으론 안 된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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