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끝판왕”은 원래 컴퓨터 게임의 ‘최종 보스’다. 하지만 의미가 확장되면서 일상어가 되었다. 유사한 말로 ‘종결자’도 꽤 유행한 적이 있다. 기표는 달라졌지만 뜻은 비슷하다. 더 이상 승급이 필요 없는 최종 단계 또는 최상의 무엇. 이를테면 “학벌의 끝판왕(종결자)은 하버드대학교”라는 식이다. 끝판왕에 대한 열망은 끝없이 성장해야 하는 피로감의 반작용인 한편, 모든 걸 줄 세워야 직성이 풀리는 비교서열 강박의 적나라한 노출이다. 또 재밌는 건 “가성비”라는 말이다.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 비율’의 줄임말이다. 같은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최선의 상품을 “가성비템”(가성비+아이템)이라고 부른다. 가격과 품질이 제각각인 수많은 상품들 사이에서 가성비템은 ‘최적의 균형점’이다. 가성비에 대한 집착은 단순히 경제적 효율을 추구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일종의 낙인 공포이기도 하다. “호갱님”(호구+고객님)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게 공포인 이유는 호갱님이 곧 ‘정보사회 무능력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끝판왕 열망’과 ‘가성비 집착’은 얼핏 이율배반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상호의존적이다. 가성비는 끝판왕의 환상은 유지하되 그것을 향한 광기가 시스템을 붕괴시키지 않도록 하는, 말하자면 압력분출 밸브로 기능한다. 견주고 줄 세우는 행위 자체는 특별히 비난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대상과 기준이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사회적 삶의 영역마다 고유한 논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장(field) 개념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각 장마다 나름의 판돈과 환상-공모가 있고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장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게 만든다. 그런데 한국은 하나의 정점을 향해 모두가 전력질주하는 사회다. 어떤 분야에서 업적을 쌓아 일가를 이룬 사람도 청와대가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간다. 지역에서 성공하면 중앙(서울)이 순식간에 빨아들인다. 여러 개의 장이 병존한다기보다 단지 거창한 중심부와 황폐한 주변부만 존재할 뿐이다. 어떤 이에겐 역동적인 사회일 테지만 다수에겐 무간지옥이다. 여러 연구를 통해 알려졌듯 한국의 물질주의는 세계에 유례없는 특이성을 보인다. 어느 나라든 일정 정도 경제가 성장한 뒤에는 개인의 자유, 참여, 생태주의, 타인에 대한 개방성 같은 탈물질주의 가치에 대한 선호가 커진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경제성장, 안전, 법질서, 타자에 대한 폐쇄성 등의 물질주의 지향이 기이할 정도로 강하게 유지된다. 그야말로 ‘장기 물질주의 사회’다. 비교하고 서열화하려는 강박은 이런 강력한 물질주의와 깊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전국 1등부터 전국 꼴찌까지 줄 세우려면 기준은 물질적 가치여야 한다. 추상적 가치는 비교하기 어렵다. 한국의 물질주의는 왜 이토록 질기고 또 강한가? 이유를 크게 세 가지 꼽을 수 있다. 첫째, ‘폭력성의 고착’. 전쟁의 압도적 폭력뿐 아니라 식민지 경험과 군부독재 시기의 억압과 모멸,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군사주의, 반공주의 등이 거의 한 세기에 걸쳐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사회에 고착시켰다. 둘째, ‘서사의 과잉과 기록의 과소’. 극적 서사와 음모론은 넘치는데 성실하게 사실을 축적한 자료들은 드물고, 있다고 해도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유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논의가 ‘리셋’되고 쳇바퀴 도는 논쟁으로 공론장에 대한 환멸만 커진다. 이런 환경에서 비평은 ‘용비어천가’이거나 ‘토황소격문’ 둘 중 하나로 소비될 뿐이다. 셋째, ‘권력 정당성의 일상적 위기’. 한국에서 정치가, 재벌, 관료 등 엘리트 권력집단이 사회적 존경을 획득한 적은 거의 없기에 권력 정당성에 대한 기대도 매우 낮다. 요컨대 권력은 원래 더러운 것이고 ‘억울하면 출세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윤리적 가치들은 냉소의 대상이 된다. 물질주의가 팽배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다양한 가치가 혼재하는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한다. 서열과 순서를 정할 수 없는 대상 앞에서 한없이 불안해지며, 자기 머리와 가슴으로 무언가를 향유하는 데에도 서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인간 대신 한국인을 집어넣으면 이렇게 바뀔 테다. “한국인의 욕망은 늘 똑같아서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그 욕망은 한국인의 ‘종족 특성’이라기보다 우리가 지금껏 만들어온 역사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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