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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김사복, 조성지, 그리고 ‘공범자들’ / 김은형

등록 2017-08-16 18:18수정 2017-08-16 19:26

김은형
문화스포츠 에디터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작으로 올해 첫 천만 관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눈부신 흥행 성적과 무관하게 영화 감상이 그닥 편치는 않았다. 왜 저 장면은 저렇게 찍었을까, 당시의 상황을 꼭 저렇게 묘사해야만 했을까, 아쉬운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그럼에도 영화의 잔상은 오래 남았다.

김사복, 영화 속 만섭이라는 인물 때문이었다. 여러모로 기억이 포개지는 <변호인>과 이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엄청난 사건을 겪은 각각의 주인공이 걸어간 다른 길일 것이다. ‘변호인’ 송우석, 그의 모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림사건 피해자의 변호를 맡으면서 평범한 변호사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운동가로 스스로를 갱신해 한국 사회와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김사복은 택시 운전사라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영화에 나오는 후일담, 만섭이 신문에서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위르겐 힌츠페터의 기사를 보는 장면은 영화로 재구성한 허구이지만 현실에서 김사복을 다시 만나고자 했던 힌츠페터의 오랜 노력에도 끝내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걸 보면 실제 인물 김사복의 선택도 영화 속 만섭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김사복에 대한 자료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에서 제작진은 힌츠페터의 기억에 기반해 캐릭터를 창조해냈다고 한다. 영화 속 그의 행적이나 성격이 대부분 지어낸 것이라고 해도 전쟁터보다 참혹했을 도륙의 현장에서 김사복의 헌신으로 힌츠페터가 무사히 촬영 필름을 서울의 공항까지 가져갈 수 있었던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밥벌이만으로 충분히 고단했을 그의 삶에 이처럼 위험천만한 사건이 끼어드는 걸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영화는 그것을 시민의 윤리로 풀어낸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웃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개인의 태도가 그것이다.

장훈 감독의 <씨네21> 인터뷰에는 이 영화를 둘러싼 개인의 윤리가 또 하나 보인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는 생전의 힌츠페터를 찾아가서 어떻게 광주에 가게 됐는지 물었다고 한다. 힌츠페터의 대답은 간단했다. “기자니까.” 감독은 좀 더 의미가 부여된 답변을 듣고 싶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물론 현장에 당도했을 때 목도한 충격은 그의 삶에 커다란 그림자로 남았지만 그가 80년 광주를 전세계에 알린 이유는 사건 현장에 달려가고 진실을 세상에 알린다는 기자 윤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얼마 전 ‘케이비에스와 엠비시를 되찾아오는 보람찬 불금파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시민 조성지씨의 인터뷰(<한겨레> 8월11일치 21면)를 보면서 <택시운전사>의 기시감을 느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언론개혁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기자가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볼 게 없더라고요.” 시청자로서 이보다 더 선명한 이유가 있을까. 국민이 내는 세금과 수신료로 운영되는 방송사, 바꿔 말하면 취사선택할 수도 없이 국민 전체에게 쏟아지는 방송 프로그램들이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지경으로 편파적이고, 왜곡된 정보로 점철된 것을 보면서 그는 ‘왜?’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경기도 직장에서 서울 방송사들까지 고단한 이동을 마다하지 않고 해답을 찾아 나서게 한 힘은 시청자로서의 윤리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개봉하는 <공범자들>은 공영방송사 경영진의 윤리와 기자·피디 등 방송 종사자의 윤리뿐 아니라 시청자로서 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끔 하는 작품이다. 제대로 볼 권리, 들을 권리를 빼앗기고도 무심하게 지나쳐온 지난 9년간의 방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응시하면서 잊고 있었던 시청자의 윤리를 회복할 기회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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