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노동문학의 이상이 노동자 자신의 글쓰기로 완성된다면, ‘세월호 문학’의 궁극 역시 당사자들의 글쓰기에 있다 하겠다. 2014년 4월16일 이후 문인들은 열성적이고 헌신적으로 증언과 위무, 분노와 각오의 언어를 쏟아내 왔다. 그 글들은 세월호와 직접 관련이 없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참사를 자신의 삶에 발생한 사건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세월호 사태 당사자, 그러니까 그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가 직접 쓴 문학작품은 만날 수 없었다. 사태 발생 시점으로부터 시간적 거리가 필요한 탓도 있겠고, 당사자가 전문 문인이 아니어서 글쓰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고로 숨진 단원고 이혜경 학생의 어머니 유인애씨의 시집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는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문학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소중한 작업이다.
“밀려오는 공포/ 참혹한 고통에 맞서 사투를 벌인 촌각/ 엄마인데도 난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 대신 아파해 주지도 않았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날 그 안을 찾는다./ 마음은 전광석화/ 수십 번을 그날로 날아가 딸을 구출해온다.”(‘살아남은 자의 슬픔’ 부분)
엄마의 시간은 언제까지나 그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제 목숨을 대신 던지고서라도 구해내고 싶은 딸의 공포와 고통을 나누고자 한다. 그럴 수 없었다는 사실이 그날 이후 엄마의 삶을 규정한다. 같은 시의 이어지는 부분에서 엄마는 음식을 섭취하고 옷을 사고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는 일상의 모든 세목들마다 죽은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그림자처럼 거느려야 한다. “추울 때 ‘춥다’거나 아플 때 ‘아프다’거나/ 이런 말들은 가능한 한 꾹 참는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날의 아침 속으로/ 잃어버린 순간을 잡는다./ 그날 아침 딸과 나의 짧은 시간/ 살포시 감싸 안은 그날 아침/ 부엌에서의 포옹 장면/ 나는 한 장의 각인된 수채화를 완성했다./ 사랑스럽게 안아주고/ 사랑스럽게 안겨주던/ 따뜻한 심장이 맞닿은/ 엄마와 딸의 마지막 포옹”(‘마지막 포옹’ 전문)
엄마의 시간이 되돌아가는 순간은 또 있다. 이번에는 공포와 고통이 아니라 따뜻한 행복의 순간. 수학여행 떠나는 날 아침, 캐리어를 들고 잘 다녀오겠다며 나가는 딸을 어째서인지 엄마는 다시 불렀다. 착하고 다정한 딸은 설거지를 하던 엄마에게 다가와 ‘엄마 왜~?’라 물었고, 엄마는 고무장갑을 벗고는 ‘으응 수학여행 잘 다녀와~. 재미있게~.’ 하며 안아주었던 것. 사랑과 행복의 원형이라 불러 손색이 없을 이 순간의 기억이 죽은 딸을 되살려낼 수는 없다 해도 가엾은 엄마에게 그 기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치 귀하다. ‘안아주다’라는 시는 사고가 일어난 지 2년여 뒤인 2016년 6월13일 꿈에서 다시 만난 교복 입은 딸을 격하게 끌어안았던 생생한 실감을 담았는데, ‘마지막 포옹’의 실제 기억이 그 바탕을 이루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딸의 생전 모습과 흔적을 간직한 사진들을 곁들인 시집에서는 자식 잃은 엄마의 슬픔과 회한, 원망과 분노, 후회와 자책, 그리고 무엇보다 먹먹한 그리움을 만날 수 있다. 어느 시에 곁들인 메모에서 엄마는 “남들은 바보라고 하겠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니 알 수가 없을 뿐…”이라 쓰는데, 당사자의 글쓰기는 남들이 대신할 수 없는 직접성의 힘으로 읽는 이에게 육박해 온다. 돌이킬 수 없는 미안함과 그리움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엄마 역시 마음이 가라앉고 딸을 위해서라도 굳세게 살아나갈 힘을 얻었기를 바란다.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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