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훈 국제부 기획팀장
편집국에서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지난 11~12일 부산시와 공동으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아펙) 공식행사의 하나인 국제 학술회의 ‘아시아의 새 질서와 연대의 모색’을 열었다. ‘아펙 반대’ 시민운동단체 쪽에서 말들이 없지 않았다. 참석 예정이던 일부 활동가는 막바지에 불참을 통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학술회의는 아펙 찬반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인가? 동아시아인가? 새 지역 질서의 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는 문제는 올해 초 국제학술회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던져진 화두였다. 학술회의 주제 그대로, 세계화 흐름과는 또다른 흐름인 지역주의, 지역 협력 흐름 속에서 세계질서의 변화 흐름을 살펴보려 했다. 가장 역동적인 경제권으로 등장한 이 지역에서 한국 외교가 갈 길은 어디이고, 시민사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부산 아펙과 다음달 쿠알라룸푸르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앞둔 시점이었던 만큼 한국뿐 아니라 미국·중국·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온 60여 학자·전문가·시민운동가들이 격론을 벌였다. 이런 규모의 학술회의가 드문 부산에서 열린 탓인지 방청석을 메운 ‘수준 높은’ 청중들의 진지한 태도와 날카로운 질문은 그 열기를 더했다.
새롭게 태동하고 있는 동아시아 질서의 틀을 단지 이틀의 회의에서 만족스럽게 제시할 수 있는 일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가능성만큼은 확인했다는 게 주최 쪽의 평가다. 9·11 이후 아펙이 여전히 유효한 틀이라고 주장하는 미국 쪽의 의견에 대한 공감대는 낮았다. 동아시아 정상회의 역시 ‘의례적 회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쏟아졌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의 걸림돌은 초강대국 미국과 지역내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중국, 그리고 이들 두 강대국 사이의 의구심일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배제된 미국은 중국의 조기 개최 이니셔티브가 ‘아세안+3’ 나라들끼리의 역내 안보협력을 위한 협의체로 나갈 것을 우려해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인도 등 세 나라를 참여시켜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의도를 희석시켰다. 아세안 또한 한·중·일을 견제하기 위해 이들 3국의 참가를 인정했다는 점도 또다른 아이러니다. 이것이 동아시아 협력의 현주소다.
그러나 다양한 이견 속에도 일치되는 의견들이 있었다. 새롭게 모색되는 질서의 틀은 한두 나라가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유럽의 경험을 배우되 동아시아 환경에 적합한 모델 창조를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선 특히 동아시아 다자협력 틀 속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을 표방한 한국의 역할에 대한 동조적 주장들이 쏟아져 관심을 끌었다. 주변 열강의 의심이나 두려움을 이용하지 않고 신뢰와 신용을 강화하는 정치적 전략으로서 이른바 ‘반 라팔로 전략’, 군사력 같은 ‘하드 파워’가 아닌 외교력과 경제협력 등 ‘소프트 파워’에 기반한 ‘연성균형’ 등 지역내 화해를 중재할 수 있는 한국의 역할에 대한 많은 기대가 표출됐다.
동아시아 질서의 틀을 구축해가는 길은 길고도 먼 여정이다. 이번 국제회의는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각국 정부의 노력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번 학술회의는 다양한 지혜를 모으기 위해 <한겨레>가 벌인 첫번째 국제적 시도였다. 한겨레는 매년 이런 형식의 국제회의를 통해 지역 질서 모색을 위한 여러 노력에 일조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류재훈/국제부 기획팀장 hoonie@hani.co.kr
류재훈/국제부 기획팀장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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