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기획자 삼성전자 가전부문 사장이 이재용 부회장의 존재감에 대해 작심하고 발언했다는 말을 듣다가 우울해졌다. 자기 사업영역에선 자신이 주인이라 생각하지만 ‘이 부회장의 생각에 견주면 천분의 일도 안 된다’는 말은 지나치다. 겸손도 아니다. ‘오너십의 발로가 삼성을 이뤘고 발전시켰는데 이 부회장의 부재로 그런 게 막혀 있어 두렵고 무섭기까지 하다’는 고백은 듣기도 부끄럽다. 60대 중반의 전문경영인이 경험이 일천한 40대 오너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갑자기 아버지를 잃은 어린 장남의 하소연 같다. 삼성맨으로 40년을 헌신해 최고경영자가 된 자신의 존재는 아예 지워버린다. 자신을 포함해 수십만명의 노동자들이 오늘의 삼성을 이뤘고 발전시켰다는 인식은 전략적으로도 없다. 오너 일가만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 기업 오너는 북한에서 최고존엄이라는 김정은의 존재감과 맞먹는다. 텔레토비 같은 김정은의 말을 옆에 서서 받아적고 조아리고 억지웃음을 짓는 나이 든 공산당 간부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김정은과 있을 때 박수의 열렬함이 떨어지거나 자세가 불량해서 곡사포 처형을 당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으면 산다는 게 뭐지 싶다. 남쪽 기업의 오너 경영자가 그 조직에서 최고의 판단력과 업무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너도 알고 나도 안다. 그러면서도 오너 경영자를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라 최고존엄으로 간주하고 그렇게 강요한다. 오너 회장을 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어느 기업의 내부 문서가 공개된 적도 있다. 삼성은 총수의 부재에 대비한 플랜B가 없다며 혼란과 불안감을 토로한다. 이런 상태가 이어진다면 삼성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치명적 손실이 있을 거라는 위기론이 또 나온다. 이제 국가는 잘하고 있다. ‘니들만’ 잘하시면 된다. 삼성 정도의 초일류 기업이 총수 부재에 대한 계획이 없을 리 없다. 그럼에도 없다. 삼성의 경영진은 이재용이라는 총수의 복귀를 전제하지 말고 총수 없는 회사로서 새로운 지배구조를 정립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르쇠로 일관한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임에도 가장 비현실적인 주문처럼 느껴져서일 것이다. 외통수가 아닌데 외통수에 몰린 집단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기업의 오너는 최고존엄이 아니다. 한 중견기업 회장이 공개 석상에서 부장의 무릎을 발로 걷어찼다. 화면을 보니 맞은 당사자는 머리를 조아리고 회장은 계속 질책한다. 익숙한 풍경이다. 이런 때는 즉시 회장이란 인간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며 대거리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직장생활이란 게 다 그렇지 뭐, 정도로 인내한다. 그자는 회장이고 나는 그와 일을 함께 하는 직장 동료일 따름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인데 성희롱을 당했을 때 대처법을 평소에 반복 교육시켜야 유사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존재감이 어이없이 휘발되는 장면에서 ‘나’를 인식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가 누구든 나는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인간이 아니다. 각자의 사정이 있어서 폭력적인 회장에게 곧바로 대거리 못 할 수도 있고 직장을 금방 때려치우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란 사실은 알고 있자는 얘기다. 알고 있으면 태도가 시나브로 달라진다. 내게 있어 최고존엄이란 자기 존엄을 지킬 줄 아는 나 자신뿐이다. 삼성 경영진도 그 사실을 알면 오너리스크가 생길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위기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되고 오너에 견줘 말도 안 되게 자기를 증발시키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삼성의 위기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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