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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한국 외교에 전략가가 없다 / 박민희

등록 2017-09-06 18:30수정 2017-09-06 19:39

박민희
국제 에디터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은 ‘아베의 외교 책사’로 불린다. 1969년 외무성에 들어가 미국·필리핀 대사관 등에서 근무했고 조약국장, 외교정책국장, 사무차관을 지냈다.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장기적으로 치밀하게 추진해왔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빌미로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그 종속 파트너로 한국을 고정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중국과 북한을 핑계 삼아 일본의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

왕후닝 중국공산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은 시진핑의 외교 책사이자 ‘중국의 키신저’로 불린다. 상하이 푸단대 최연소 교수가 된 국제관계 전문가이며, 1995년 40살 나이에 장쩌민 주석의 참모로 발탁된 뒤 후진타오,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세 지도자의 통치·외교 전략을 설계했다. 지난 십여년 동안 중국 지도자들의 정상회담마다 항상 그가 등장했다. 미국의 견제에 맞서면서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핵심 이익’을 확고히 하는 포석을 한수 한수 놓고 있다. 중국 외교에는 왕후닝과 더불어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국제무대의 ‘경극배우’로 불릴 정도로 현란한 외교술을 보이는 왕이 외교부장 등이 줄줄이 포진해 있다.

한국 외교에선 전략가가 보이지 않는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 외교안보팀의 전략 부재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진통 끝에 최근 발표된 미·중·일·러 ‘4강 대사’ 인선도 대통령의 측근이란 점만 부각될 뿐 전문성도, 과감함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4개월 남짓 문재인 정부의 외교를 돌아보면 미국의 압박과 요구에 속수무책이었고, 중국과의 관계는 기대에서 실망으로 바뀌었고, 미국과 밀착해 한국을 움직이려는 일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해 동아시아에서 발언권을 높이려 한다.

서두른 6월 한-미 정상회담이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 한반도 상황에 대한 우리 나름의 준비를 한 뒤 한-미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미국 먼저’ 주장에 밀렸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에 간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과 협의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을 두고 보수세력이 공격하자, 청와대가 “개인적 발언일 뿐”이라며 거리두기에 바빴던 것은 불안한 신호였다.

급하게 정상회담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사드 조기 배치를 압박했고 한국은 굴복했다. 환경영향평가와 배치 결정 과정의 재검토 약속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드 배치로 인한 경제보복은 고스란히 한국이 뒤집어썼다. 최악의 한-중 관계는 북한 핵·미사일 도발이 계속되면서 한-중 간 전략적 협력이 꼭 필요한 시점에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더 비관적인 것은 사드 배치에서 약점을 보인 결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가장 만만한 상대로 여기며 한국이 거액을 내야 할 명세서들을 계속 내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정치적 위기 때문에 극우 지지층 결집이 시급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 철폐’ 등을 위협하며 미국에 훨씬 유리한 개정에 동의하라는 압박을 노골화하고 있다. 미사일 탄두중량 제한 철폐를 인심 쓰듯 했지만, “수십억달러 미국산 무기와 장비 구입”이 대가다.

북한의 막무가내 도발과 핵·미사일 문제 악화라는 변수를 중심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지각판이 요동치고 있다. 쉬운 해법은 없다. 한국의 시각에서 명확한 전략적 중심을 잡고 새 지도를 그려 길을 뚫어갈 수 있는 전문성과 담대함을 갖춘 전략가들로 새 외교안보팀을 짜야 한다. 북한의 도발 때마다 제재 강화와 새 무기 도입 주문만 외워서는 위기에서 헤어날 수 없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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