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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내 안의 바바둑 / 김은형

등록 2017-09-13 17:54수정 2017-09-13 19:14

김은형
문화스포츠 에디터

얼마 전 티브이의 한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지난 10년간 최고의 공포영화로 꼽힌 작품’이라고 소개한 <바바둑>을 찾아봤다. 오스트레일리아 여성 감독의 2014년 데뷔작인 이 영화는 선댄스 등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받았지만 많은 공포영화가 그렇듯 국내 정서와 안 맞는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미개봉인 채 아이피티브이(iptv)로 직행했나 보다.

영화는 남편을 잃고 요양원에서 일하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엄마는 <바바둑>이라는 정체불명의 동화책을 아이에게 읽어준 뒤 서서히 악령에 사로잡힌다. 영화의 막바지에 엄마가 괴물처럼 변해 아이를 공격하는 장면을 보다가 ‘헉’ 소리가 났다. 불과 1~2년 전의 내가 화면에 등장한 것 같아서다.

이상해진 엄마가 두려운 아이가 옆집 할머니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하자 전화기를 부수면서 “엄마 망신 주려고 작정했어?” 괴성을 지르거나 “왜 너는 다른 아이처럼 놀지 않는 거야” 폭발하는 엄마가 그때의 나, 수시로 아이에게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해” “엄마 죽는 꼴 보고 싶어?” 퍼붓던 내 모습과 너무나 흡사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악령은 일하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벗어나기 힘든 피로와 궁핍, 고립감의 알레고리다. 1년 동안 아이를 홀로 건사해야 했던 나는 주인공만큼 피로에 절거나 경제적 압박이 심하지 않았지만 몇만원 허투루 쓰는 것에도 예민할 수밖에 없었고,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도 아이를 맡길 데가 없는데다 하소연을 늘어놓을 친구도 가까이 없는 상태였다. 아이한테 퍼붓고 나면 죄책감과 무력감에 커튼을 내린 채 어두운 방 안에서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조건만 놓고 보면 영화의 주인공도 켄 로치 감독의 주인공들처럼 최악의 상황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육체의 피로, 아이의 예민한 성격이 빚어내는 크고 작은 갈등,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외로움 등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본의 아니게 호의적인 동료를 실망시키고, 이웃의 선의까지 거절하게 되며, 아슬아슬했던 가족의 삶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려 간다. 영화는 악령을 소멸시키는 여느 공포영화와 다른 결말의 길을 간다. 최악의 파국은 막았지만 삶을 위협하는 실질적인 조건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악령은 언제라도 다시 출몰할 수 있다는 여운을 남긴다.

이런 마무리를 보면서 나는 궁금해졌다. 꼬마 사무엘은 어떻게 자라날까. 엄마가 돈 많고 인품도 훌륭한 남자를 만나 근사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거나 사무엘이 키팅 같은 선생님을 만나서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하는 ‘할리우드 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현실에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육체와 감정 노동의 반복으로 엄마는 남보다 빨리 늙어갈 것이고, 학교에서 이상한 아이로 낙인찍힌 사무엘은 점점 더 고립되고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이 삐딱해지고 말썽쟁이가 돼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렇게 사무엘이 ‘불량 청소년’으로 자라나 친구를 잔인하게 괴롭혔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사무엘이나 그 엄마의 몫이 되어야 할까. 사무엘을 감옥에 넣어 일찌감치 사회적 매장을 시키고 아이를 잘못 키운 죄로 엄마까지 처벌한들 또 다른 수많은 사무엘들이 개과천선할 수 있을까. 골치 아픈 문제아를 사회에서 격리하고 자식을 포기하다시피 한 부모한테 돌팔매질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부모의 불안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염되는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집안 깊숙한 곳에 가둬졌던 바바둑은 다시 스멀스멀 올라와 엄마에게든 아들에게든 칼을 쥐여줄 것이다. 청소년 범죄의 예방이나 관리가 단순히 소년법 폐지나 처벌 강화 논의로만 흘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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