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자폐증 정치

등록 2005-11-20 17:10수정 2005-11-20 17:14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얼마 전 출범한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새로운 형태의 보수 대중운동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난 수십년간 관변 보수단체만 봐온 국민들의 눈길을 끄는 데도 일단 성공했다. 자신들의 희망대로 건강한 풀뿌리 운동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뉴라이트(신우파)는 1960~70년대에 떠오른 미국 네오콘(신보수파)과 닮은 데가 있다. 전향한 좌파들이 초기 네오콘 운동을 주도했듯이, 뉴라이트 운동을 이끄는 몇몇 인사들은 과거 진보 운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네오콘이 기독교 우파와 결합해 신우파를 형성한 것처럼, 뉴라이트 운동이 기독교 보수파와 처음부터 손잡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양쪽이 정권 교체 등 정치적 목표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그뿐이다. 나름대로 보수의 영역을 넓히며 한 세대 이상 생명력을 유지해온 네오콘과 달리 뉴라이트는 수구보수의 울타리를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창립선언문은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연이은 좌파의 집권으로 대한민국 우파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왔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곧, 노무현 정권은 물론이고 김대중 정권도 좌파정권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닌가? 과거 독재 정권들은 김대중씨에게 집요하게 ‘용공분자’ 또는 ‘빨갱이’라는 굴레를 씌워 정치 활동을 옭아매려 했다. 뉴라이트는 이런 수구보수의 전형적 행태를 김대중 개인을 넘어 정권 차원으로 확대시킨다.

나아가 두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까지 문제 삼는다. 뉴라이트에 따르면, 이제 “좌익 세력은 국가정책을 좌우하는 위치로 성장”했고 “많은 국민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이 좌편향”됐다. 여기서 좌익은 “북한 공산체제를 신봉”하고 “사회주의 국가이념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언제 혁명이라도 일어난 것 같다. 현실이 정말 그렇다고 믿는다면 풍차를 적으로 삼은 돈키호테이고, 알면서도 그런다면 군사독재 뺨치는 여론조작이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창립대회에는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 후보가 모두 참가했다. 이 시장은 “실패한 (북한) 제도를 동경하는 게 말이 되냐”고 했고, 박 대표는 “뉴라이트와 한나라당은 가는 길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최근 프랑스를 휩쓴 이슬람계 청년 소요사태에 대해, 보수 논객인 기 소르망은 ‘국가자폐증’을 원인으로 꼽았다. 정치계와 일반 사회가 총체적으로 단절돼 있는 상황에서 국가는 허공에 대고 공화국과 국민통합을 외쳐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국가)를 회생시킬 수 있는 치료법’으로 자기비판을 꼽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와 행동의 굴레를 만들어놓고 그 속에서 낡은 목소리를 높이는 자폐증은 뉴라이트 운동과 한나라당에도 적용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건 아니다. 집권당으로서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졌으면 열린우리당은 환골탈태해야 정상이다. 지난 대선에서 반이회창 분위기를 타고 극적으로 이겼듯이 다음 선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근거없는 낙관이 있는 듯도 하다. 역시 심각한 자폐증이다. 민주노동당도 기존 테두리를 넘지 않는 한 한때 20% 가까웠던 지지율의 회복은 먼 꿈이다.

다양한 이념을 표현하는 정치운동과 정당은 사회 구성원의 성찰과 활력을 이끌어내는 주요한 동력이 된다. 단, 올바른 인식과 실천력을 가질 때만 그렇다. 지금과 같은 ‘자폐증 정치’로는 갈등만 키운다.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