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에디터 “그분은 전 신민당 총재 김영삼씨의 단식사태를 알게 된 경위를 먼저 적었다. … 잔잔하던 사연도 그 대목에 이르면 사뭇 소용돌이친다. 단식사태에 으레 따라붙는 ‘반달곰’ 기사와의 대조를 역설하고 난 그분은 나를 이렇게 질타한다. … ‘신문기자, 당신들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말하고 싶습니다.”(1983년 6월18일치 <동아일보> 김중배 칼럼 “신문기자, 당신들”) 이 칼럼에서 언론인 김중배는 대구의 한 독자가 보낸 편지 사연을 소개하며, “직격탄을 가슴에 맞고 난 나는 하늘을 쳐다볼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1983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는 그해 5월18일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은 23일간의 김영삼 전 총재의 단식투쟁을 ‘정치 현안’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짧게 보도했다. ‘김영삼 단식’에는 침묵하던 언론들이 반달가슴곰 기사는 대서특필했다. 강원도 설악산에서 밀렵꾼의 총을 맞고 신음하던 야생 반달가슴곰 한 마리를 확인했다고 한 신문이 5월21일치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후 ‘반달가슴곰을 부검하니 어른 주먹 크기의 웅담이 나왔다’ 등 곰 기사가 쏟아졌다. 당시 재야인사들은 ‘이 나라에는 인권은 없어도 수권(獸權)은 있다’고 한탄했다. 전두환 정권뿐만 아니다. 박근혜 정권과 이에 굴종한 언론사도 국민의 관심을 돌리는 데 동물을 악용했다. 김장겸 <문화방송>(MBC) 사장이 보도국장이던 2013년 엠비시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는 ‘동물의 왕국’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 2013년 5월부터 11월까지 동물뉴스가 그 전해 같은 기간에 견줘 약 4배가 늘었다. 지난여름 살충제 달걀 파동을 겪으며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동물복지, 동물권 논의는 걸음마 단계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변호사 시절인 1994년 ‘동물권의 전개와 한국인의 동물인식’이라는 논문을 썼다. 박 시장은 “당시 사람들이 ‘아직 인권도 보장 안 되는데 무슨 동물의 권리까지 얘기하냐’고 비판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겨레>가 시작한 기획시리즈 ‘동물원의 살아남기’에 대해 일부에서는 ‘적폐청산에 집중해야 할 때 한가하게 동물원 타령이냐’고 지적했다. 4년 전 엠비시가 국정원 댓글 공작 등 박근혜 정권에 불리한 뉴스를 덮기 위해 동물뉴스로 도배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히 나올 만한 반응이다. 믿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 동물원 기획은 촛불의 한복판에서 시작했다. 촛불이 정점을 향해 가던 지난해 12월께 타인의 아픔에 대한 박근혜 전 대통령 공감능력 결여가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국정농단 사태가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국격도 떨어졌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이 무렵 접했다. 국격을 높이고 ‘공감능력 제로’ 박근혜 아류 정치세력의 발호를 막으려면, 사람이건 동물이건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타자의 아픔을 느끼는 사회적 공감능력 키우기가 시급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부서 후배들과 ‘동물원’ 기사를 준비했다. 낯선 동물권의 개념을 설명하기보다 친숙한 동물원을 통해 보여주기로 했다. 동물권 확대는 그 사회 인권이 신장하고 복지 수준이 올라가면서 가능하다. 인권과 동물권은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느냐’며 코웃음 칠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선진국이란 미국과 유럽에서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흑인에게 인권이 있는가’, ‘여성에게 투표권이 있는가’라며 비웃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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