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미국 정부나 지도자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상정한 발언을 할 경우, 한국 정부는 즉각 명백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제동을 걸어야 한다. 필자가 만난 정부의 정책담당자 대부분은 트럼프의 거친 말폭탄이 한반도를 더 위험하게 만들 뿐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개적으로 트럼프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고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평화는 의지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였지만 지금 한반도는 군사적 충돌을 걱정할 만큼 더 위험해졌다. 새 정부 출범 후 지난 5개월 동안 북한의 아이시비엠(ICBM)급 탄도미사일과 수소탄 시험이 이어졌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정권 사이의 아슬아슬한 말폭탄 공방도 빈발했다.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을 점치는 외신을 접하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실로 우리의 터전인 한반도의 운명이 살얼음판 위에 놓인 긴박한 형국이다. 한반도 정세가 위태로워진 것이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의 무모하고 무능한 정책의 결과를 유산으로 물려받았으며 대외적으로 북-미 대결이 극단으로 치닫는 최악의 상황에서 출범했다. 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북핵정책은 매우 실망스럽다. 아직 정책 하나하나의 성패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적어도 대미 외교에서 문재인 정부는 이미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정부 스스로 공언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나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위한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창의적 방안에 대해서도 아직 들어본 이가 없다. 문 대통령은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천명했으나, 막상 한반도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트럼프-김정은의 말폭탄 공방에 일말의 브레이크도 걸지 못했다. 우리의 영향 밖에 있는 북한 정권에 대해서만 경고했을 뿐, 끊임없이 전쟁 가능성을 입에 담는 트럼프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이런 자세로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를 막고 평화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대미 외교에서 강단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 정부에 두 가지 점을 조언하고 싶다. 첫째, 미국 정부나 지도자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상정한 발언을 할 경우, 한국 정부는 즉각 명백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제동을 걸어야 한다. 필자가 만난 정부의 정책담당자 대부분은 트럼프의 거친 말폭탄이 한반도를 더 위험하게 만들 뿐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맞는 걱정이다. 사실 트럼프-김정은의 말폭탄 공방은 미국의 희망과는 반대로 북한에서 김정은 정권의 공고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역설까지 낳고 있다. 그렇다면 공개적으로 트럼프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고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둘째, 미국의 북핵정책이 비합리적일 경우 우리의 대안을 제시하고 적극 설득해야 한다. 흔히 우리는 한-미 공조를 강조하며 ‘미국과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지만 자칫 그것이 대미 추종이나 편승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조란 국가 간에 이익이 다르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모든 것이 일치한다면 공조가 필요 없다. 미국과 우리가 이견을 조율하여 절충점을 찾는 것은 공조의 정상적 과정이다. 한-미 공조 과정에서 한국 외교가 운신할 수 있는 독자적 공간을 확보하고 이를 확장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공간이 없으면 한-미 공조는 대미 추종 노선에 불과하게 되며, 북한이나 중국은 우리를 쳐다보지 않고 미국만 상대하려 할 것이다. 미국도 한국 정부를 독립변수로 보지 않게 된다. 경험으로 볼 때 북핵외교에서 독자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데는 고통이 따른다. 어떤 때는 미국과의 갈등도 감수해야 한다. 트럼프처럼 막가파에 가까운 파트너를 상대하려면 애로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보수언론’으로부터 쏟아지는 ‘한-미 동맹을 위태롭게 한다’는 선동적 비난을 감내해야 하고 보수야당의 정략적인 ‘반미’ 공세도 견뎌야 한다. 단기적으로 대통령 지지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가야 할 길이지만 지도자의 철학과 비전이 없으면 가기 어려운 길이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의 어둠이 너무 깊어져서 머지않아 새벽이 올 것 같다. 아니 새벽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전쟁이라는 어둠의 블랙홀로 빨려든 것이기에 새벽은 꼭 와야 한다. 그러나 그 새벽은 자연의 새벽과 달리 사람들이 열어야 한다. 요행히 우리가 손 놓고 있는 사이에 타국의 노력만으로 새벽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맞이한 새벽의 자리에 우리가 차지할 마땅한 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새벽을 기다리는 기도가 아니라 새벽을 여는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연재이종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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