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근
정치에디터
여권에서 부산시장 출마설이 도는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최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시계가 탐난다. 아직 못 받았다. 우씨 폼나는데 사진만 찍고 돌려준다… ㅜㅜ’
문재인 대통령의 사인이 들어간, 이른바 ‘이니시계’를 손목에 차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찍은 사진과 함께 올라온 이 글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호철 전 민정수석의 관계를 고려하면, 그가 이니시계를 못 받았다는 건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지극히 정상화된 권력이라는 걸 의미한다. 여권 인사들이 너도나도 이니시계를 구하려 아우성칠 때 “이호철도 못 받았다”고 말한 청와대 관계자의 해명을 확증시켜 주는데다, 이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처럼 최고권력자와의 친소 관계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원가 4만원짜리 손목시계 배분조차 ‘원칙’을 지키는데, 국정 운영이나 국가권력 배분에는 더 엄밀한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는 추론도 해봤다. 과거 여권 핵심 인사나 청와대 관계자들이 ‘대통령 사인이 담긴 시계’를 쉽게 선물로 건네던 경험에 비춰, 문재인 정부는 뭐 하나 허투루 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도 해봤다.
더욱이 청와대 내부의 이니시계 배분조차 청소노동자 등에게 먼저 돌아가도록 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이니시계는 배려의 수단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2017 위아자 나눔장터’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이 기증한 ‘1호 이니시계’가 420만원에 팔렸고, 그 수익금이 나눔에 쓰일 테니 이만큼 멋진 아이템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니시계가 이미지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권력과의 친소를 가르는 소재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선물로 준 이니시계를 그 아내가 수십만원에 중고시장에 내놨다가 신상이 털린 일이 있다. 개인의 일탈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디제이 시계’가 너무 흔해 공공근로 나간 어르신도 차고 있다가 ‘배려를 받았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있었지만, 과도한 ‘품귀’도 문제를 유발한다.
희소성만큼이나 갖고 싶은 욕망이 커지고, 그것을 가진 사람이 권력과 가까운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청와대 안에서 어떤 참모는 이니시계 3개를 받았다는 얘기가 돌면서 ‘정말 실세’라는 뒷말이 일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이니시계 하나 못 구하느냐’는 비아냥이 나온다고 한다. 문 대통령과 가까운 한 의원은 “당 안에서 이니시계를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를 두고, ‘선택받은 자와 못 받은 자로’ 구분된다”며 “이건 청와대 방문자에 대한 답례품이라는 취지를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당 지도부 초청 청와대 만찬에서 이니시계를 추후 보내주기로 약속하고, 아직도 안 보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대통령의 시계를 권력과의 친소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걸 막고, 품격 있는 답례품의 의미를 담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중과 다른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평창올림픽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단으로 이니시계를 특별 경품으로 내걸자는 제안까지 나왔다고 하니, 더 씁쓸하다. 탈권위, 배려의 상징인 이니시계가 권력의 상징, 이미지 정치 수단으로 변질하는 느낌 때문이다. 제한된 예산으로 만드는 이니시계를 마구 배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차라리 청와대 사랑채 내 기념품점에서 대중을 상대로 판매하는 건 어떨까. 적당한 이익을 붙여 남은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거나, 좀 더 많은 청와대 방문자들에게 선물로 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문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첩이 품귀 현상으로, 발행 하루 만에 수십만원을 호가한 적이 있다. 이에 우정사업본부는 아예 인터넷을 통해 일제히 추가 주문을 받았다. 우표첩 확보를 위한 논란도 사라졌다. 그냥 해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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