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기성세대는 어느 시대든 ‘꼰대’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앞세대의 경험은 뒷세대로 전수되어야 하고, 꼰대는 욕먹을지언정 ‘꼰대질’을 해야 한다. 최악은 젊은이들 입속 혀처럼 굴며 격려와 응원의 말을 늘어놓으면서 실은 그들을 착취하는 자들이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라면에 ‘좋았던 옛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본 만화 <라면요리왕>의 한 장면이다.(여기서 라면은 인스턴트 라면이 아니라 일본식 ‘라멘’이다.) 해외에서 활약하던 유명 건축가가 30년 만에 귀국해 젊은 시절 먹던 추억의 라면을 먹고 싶어 한다. 라면 마니아인 주인공이 잘나가는 라면집들을 소개해줬지만 그는 이 맛이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다음엔 손님 하나 없이 파리만 날리는 소위 ‘끝장난 가게’로 간다. 라면을 먹자마자 건축가는 고함을 지른다. “바로 이 맛이야!” 하지만 표정은 일그러져 있다. “지금 먹자니 엄청나게 맛이 없군….” 한 세대의 시간 동안 라면이란 장르는 눈부시게 진화했다. 그 결과 옛날에 그토록 맛있게 느껴졌던 라면도 지금은 맛이 없어 못 먹을 정도로 ‘퇴물’이 되어버렸다. 이 때문에 주인공은 라면에 좋았던 옛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것이다. 건축가는 현실을 선선히 받아들인다. “오랜만에 고향에 오니 모든 게 낯설어 옛날이 더 좋았다고 느껴졌거든. 하지만 난 그저 과거의 노스탤지어로 도피하려던 것일 뿐이었어.” 어디 라면뿐일까. 변화가 빠른 첨단 분야일수록 저 말은 진실일 확률이 높다. 어제 멋지게 통했던 전략이 오늘 당치 않은 시대착오가 된다. 여기서는 기성세대의 잔소리 따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난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는 기성세대의 성공담은 대개 쓸모없는 자기 자랑에 불과하다. 아니 쓸모없는 정도를 넘어 해로울 수도 있다. 이를테면 그 옛날 환경과 인권을 짓밟던 불도저식 경영을, ‘성공했다’는 이유로 2017년 한국 사회에서 재현해야 할까? 어불성설이다. 이 영역에서 공동체의 역할은 단순해진다. 젊은이의 혁신에 간섭하지 말 것. 넘어진 이에게 일어설 기회를 줄 것. 반면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영역이 있다. 자유, 평등, 평화, 존엄과 같은 윤리적 가치다. 그런 가치들은 학교에서 교육되지만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치의 소중함을 진정으로 깨닫는 계기는 구체적인 사건과 체험을 통해서다. 기성세대란 단적으로 말해서 ‘사무치게 겪어본 이’다. 윤리적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경험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적어도 ‘더 낫게 실패하는 법’을 알려줄 수 있다. 기성세대의 경험, 특히 실패담은 다음 세대와 공동체 전체에 도움이 된다. 또한 가치에 대한 사유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물질적 풍요를 달성해야 하는지 성찰하게 함으로써 공동체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말하는 기성세대는 ‘꼰대’라고 비난당하기 일쑤다. 이들을 편의상 ‘가치지향 꼰대’라고 부르자. 반면 옳고 그름보다 물질적 성공에 초점을 두고 자신의 성공담을 설파하는 꼰대를 ‘물질지향 꼰대’라고 부르자. 이 물질지향 꼰대들의 경우 하는 짓은 전형적 꼰대임에도, 종종 꼰대라는 비난을 피해간다.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돈 좀 벌고 사회적 지위가 있다 하면 “멘토”니 “구루”로 불러주는 세태도 한몫했다. 이는 기이할 정도로 강한 한국인의 물질주의 성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넘쳐난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쉬운 일이다, 정말 어렵고 필요한 건 경쟁에서 살아남는 요령이다.” 천만에. 옳고 그름을 제대로, 깐깐하게 따지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편법과 요령이란 종목에서 한국은 언제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라였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나? 세월호 참사였다. 한국 꼰대들의 문제는 지나치게 물질지향적이면서 동시에 꼰대의 기개도 없다는 거다. ‘꼰대 부장이 되지 않는 법’ 따위의 글을 공유하면서 ‘난 아직 꼰대 아님’을 전시하려는 기성세대가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러면서 후배들 평양냉면 사주며 ‘면스플레인’이나 하고 있다. 한심한 노릇이다. 자기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기성세대는 어느 시대든 ‘꼰대’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앞세대의 경험은 뒷세대로 전수되어야 하고, 꼰대는 욕먹을지언정 ‘꼰대질’을 해야 한다. 물론 분야 나름이다. 나쁜 건 자기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지도 않으면서 닦달하는 꼰대다. 이들은 그나마 낫다. 욕이라도 먹기 때문이다. 최악은 젊은이들 입속 혀처럼 굴며 격려와 응원의 말을 늘어놓으면서 실은 그들을 착취하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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