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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2] 여러분, 바이크 출근이 이렇게 좋습니다 / 김지숙

등록 2017-11-22 18:20수정 2017-11-22 22:48

김지숙
디지털뉴스팀 기자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고생스러워. 뭐 그래도 편하긴 하지. 요즘도 한 대 사서 타고 다니고 싶다니까!”

오토바이를 샀다는 나의 고백에 대한 60대 어머니의 말씀이다. 젊은 시절 화장품 외판원을 했던 어머니는 10년 가까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셨다. 당시 ‘바이크 생활’이 어땠는지 ‘취재’하다 깨달은 것은, 어머니가 맨 처음 오토바이를 산 게 현재의 내 또래였다는 사실이다. 한여름 국도를 달리는 오토바이의 뒷자리에 앉아서 맡았던 흙냄새와 차체를 안정적으로 지탱했던 어머니의 튼튼한 두 다리가 아직도 눈앞에 또렷이 그려진다. 열에 아홉은 ‘위험하다’며 만류했던 오토바이를 겁도 없이 지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선행 학습 덕택이었을 것이다.

겁보인 주제에 일을 치고 나니 앞이 막막했다. 생전 처음 타보는 바이크를 어떻게 배워야 할지, 타는 법을 알려주는 학원이 있는 건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공터에 끌고 나가 천천히 타보라’는 그의 조언에 버럭 해버린 것. 공터까지는 또 어떻게 가져가냐고! 그러나 구세주는 가까이에 있었으니, 전편에서 헬멧부터 지르라고 ‘영업’을 한 선배 바이커 MOLA님이 친히 집 근처로 납시었다.

가까운 구청 마당으로 갔다. 기어 변경이 없는 ‘벤리 110’의 조작은 대체로 어렵지 않았다. 스로틀을 당기면 전진이고, 정지할 때는 브레이크만 잘 잡아주면 됐다. 코너링은 좀 더 까다로웠지만 그것도 금세 자신감이 붙었다. 내처 그날 밤 공도에 나섰다. 차가 없는 한적한 도로를 달릴 때의 상쾌함이란. 그날의 짧은 ‘밤바리(밤 바이크 나들이)’는 내게 바이크에 대한 갈증만 키우고 아쉽게 끝나고 말았다. 동네 마실 때만 타겠다는 결심은 이날 무너졌다. ‘매일매일 타야지. 바이크 출퇴근도 해야지!’

지난 8일 드디어 주행 1,000㎞를 넘어선 스쿠터의 계기판.
지난 8일 드디어 주행 1,000㎞를 넘어선 스쿠터의 계기판.

지난 7월 초 바이크를 받은 지 사흘 만에 첫 바이크 출근에 나섰다. 서울 은평구 집에서 회사가 있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까지는 대략 8km. 아예 모르는 길을 가기보다는 평소 버스를 타고 다녀 익숙한 길을 택했다. 집에서 서대문까지 직진만 하면 되는 통일로를 타고, 서울역 교차로 앞에서 만리재로로 들어서기로 했다. 가는 길에 첫 주유도 해봤다. 그날 허둥대는 내 모습을 보고 ‘천천히 하라’고 말했던 직원분의 친절을 잊을 수가 없다. 두 세 번 심장 쫄깃해지는 순간이 지나가고, 자동차 뒤꽁무니를 조심히 따르다 보니 어느덧 회사 앞에 이르렀다. 1시간 걸리는 출근길을 40분 만에 도착했다.

바이크 출근 4개월, 교통비 한 달 평균이 이전의 최소 7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리터당 연비 53㎞인 ‘벤리 110’은 1만원만 주유해도 한 달을 너끈히 달렸다. 그동안 3~4천원이 대수냐며 허투루 써버렸던 택시비도 온전히 보전됐다. 무엇보다 아침의 시작이 달라졌다. 만원 전철 안에서 멍하니 스마트폰만 보던 시간이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다소 복잡한 도로사정을 고려하더라도, 바람은 상쾌했고 주변의 풍경은 매일매일 조금씩 새로웠다.

야근을 마치고 늦은 밤 텅 빈 도로를 달릴 때면 생활 바이크 인으로서의 뿌듯함이 밀려왔다. 매일 시골길을 달렸을 어머니 얼굴도 떠올라 뭉클했다. 바이크를 탈 수 없다는 이유 하나로 비 오는 날이 싫어졌다고 하면 마음이 온전히 표현될까. 누군가 바이크 출근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타세요! 두 번 타세요”라고 할 것이다. 물론 안전하게. 미래의 내 딸들도 이 재미를 꼭 누려야 할 텐데!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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