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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2113시간 노동과 자살률 / 강모열

등록 2017-11-23 18:10수정 2017-11-23 19:35

강모열
일터 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학술윤리부장

2113시간. 이는 2015년 우리나라 취업자의 평균 연간 근로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근로시간보다 347시간이 많다. 하루 8시간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1년에 43일 더 일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사람보다 1년에 약 1개월 반 정도 더 일한다는 거다.

왜 이렇게 많이 일할까?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를 더 채용하느니 초과근로를 이용하는 게 더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일 것이다. 사용자 측에서는 노동시장 경직과 효율성을 이야기하지만, 결과적으로 부담을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노동자도 상시적 고용불안에 대한 대응과 소득보전을 위해서 장시간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무엇을 대가로?

적절한 수준의 일은 우리에게 생계를 보장해주고,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주고, 자기 효능감을 느끼게 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건강한 삶을 사는 데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것이 과하게 되면, 삶의 전체적인 균형을 깨뜨려 우리를 병들게 하고 죽인다. 몸은 기본적으로 자기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몸이 지치고 어느 정도 이상이 생겨도 적절한 휴식을 하면, 대부분 스스로 회복된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은 이를 방해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장시간 노동의 건강 영향으로는 피로, 졸림, 면역 감소, 비만, 고혈압, 당뇨, 중풍, 심근경색과 같은 신체적 질환에서부터 우울·불안, 자살 사고와 같은 정신적 문제, 흡연, 알코올 남용, 운동 부족, 부적절한 식습관과 같은 불건강한 생활습관 등이 밝혀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장시간 노동은 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 그리고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을 갉아먹는다. 우리 각자에게 시간은 생명의 조각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나누는 것은 생명을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너무 작은 대가로 맞바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장시간 노동 관행으로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과 노후 대책 없는 노인들도 직간접적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인은 주 직장에서 50~60대에 퇴직하지만, 실제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퇴직하는 연령은 72.9살로 오이시디 국가 중에서 가장 늦다. 한국인은 은퇴를 가장 늦게 하면서 연간 근로시간도 가장 길다. 평생 엄청나게 오래, 많이 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직업을 잃으면 빠르게 빈곤층으로 전락해 노인 빈곤율은 50% 수준이다. 이 역시 압도적인 1위다. 너무 가혹한 노동생애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 자살률이 기이할 정도로 높은 게 이상한가?

노인들의 빈곤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과로사와 과로자살도 그렇다. 누가 그들을 죽였나?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미워해야 하나? 그렇다고 기업에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최대한 적응하여 끊임없이 성장과 이윤을 추구하는 게 기업의 생리이다. 오히려 적절한 환경조건을 만들어주어야 할 정치권의 직무유기가 원망스럽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문제는 2013년부터 국회에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2015년 9월 노사정은 연장근로에 휴일근로를 포함해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52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합의했지만 당시 합의안은 19대 국회에서 파견법 등 다른 노동 관련 법 개정과 맞물리면서 통과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도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가 진행 중이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장시간 노동 관행으로 인해 많은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여전히 잠재적인 피해자다. 부디 여기서 멈출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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