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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수급자는 복지의 적인가? / 김윤영

등록 2017-11-30 17:48수정 2017-11-30 19:33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2010년 12월31일, 한해를 마감하는 마지막날 서울의 한 노부부가 목숨을 끊었다. 그들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이혼을 가장하고 한 명분의 수급비로 함께 생활하던 중이었다. 이들은 유서에 ‘수급비 가지고는 생활이 안 돼 죽음을 선택한다’고 남겼다. 당시 수급비는 43만원, 부부의 한달 월세는 30만원이었다. 정부의 입장에서 이들은 부정수급자다. 사실혼 관계를 은닉하고 허위로 이혼신고를 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회피하고 수급비를 받아서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것들을 감시하기 위해 2010년 통합전산망을 도입했고, 행방불명이나 사실상 이혼 등의 사유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면제받던 사람 10만2340명을 2010년 9163명으로 줄였다.

일명 ‘어금니 아빠’가 기초생활수급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시 부정수급 단속이 도마에 올랐다. 보건복지부는 ‘적정급여 티에프(TF)’를 구성하고, 선제적 대처에 나설 것이라고 홍보했다.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인 이 조치에 등골이 서늘하다. 예산 효율화, 부정수급 단속, 누수 없는 복지와 같은 말은 재앙의 전조였기 때문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줄곧 부정수급 근절, 복지예산 효율화를 외치며 빈곤층과 복지수급자에게 칼날을 겨눴다. 2010년 통합전산망을 도입한 이후 부양의무자와 수급자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지며 일방적인 수급탈락 통보를 내렸고, 수급자들의 연쇄적인 자살로 이어졌다. 근로능력평가를 강화한다며 국민연금공단으로 조사기관을 이전한 이후 ‘근로능력 있음’ 판정은 5%에서 15%로 세배나 껑충 올랐고, 억지로 취업해야 했던 고 최인기님은 청소부로 일한 지 3개월 만에 코마 상태에 빠져 숨졌다.

‘어금니 아빠’나 국민권익위원회가 홍보하곤 하는 부정수급 사례는 흔한 일이 아니다. 통합전산망 도입으로 유무형의 자산을 보험과 예금, 통장의 평균 잔고까지 샅샅이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이웃 주민들의 높은 신고 정신은 수급받는 노인이 폐지만 주워도 신고로 이어지는 지경이다. 부정이 있다면 개인보다는 제공기관의 죄가 훨씬 크다. 박근혜 정부의 ‘부정수급 통합 콜센터’는 출범 100일간 100억원 부정수급을 잡아냈다고 자랑했지만 이 중 97억8천만원은 제공기관 비리였다. 허위수가, 과다청구, 장기입원 유도 등 공급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지만 화살은 빈곤층과 복지수급자에게 향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정부의 태도가 사회 전체에 전이된다는 점이다. 복지수급자를 예비범죄자화하며 이웃 주민과 사회복지 노동자에게 복지수급자에 대한 감시의 시선을 단단히 조일 것을 주문할 때, 복지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호혜가 된다. 복지의 혜택을 받을 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를 권한을 평범한 시민들, 즉 현재 납세자들이 갖는다는 위계를 만든다. 정말 필요한 사람만 골라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선의가 이영학과 같은 사태를 만들지 않았는가. 우리는 한 사회에서 빈곤, 장애, 질병과 같은 공통의 위협을 가진 시민들이다. 지금 나에게, 내일 당신에게 올 수 있다.

우리가 정말 염려해야 하는 것은 소수의 부정수급자가 아니라 좁디좁은 복지의 터울에 자신의 몸을 욱여넣어야 하는 사람들, 그나마 있는 복지조차 얻지 못하고 허덕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다. 기초생활수급자는 166만명, 인구의 3.2%다. 최저생계비 이하 절대빈곤층은 7.7%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이들의 절반도 커버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수급자는 복지 확대의 적이 아니다. 부정수급 프레임이 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좀더 의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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