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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일본, ‘위안부’ 소장 받아라 / 권태윤

등록 2017-12-28 18:15수정 2017-12-28 19:10

권태윤
변호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제강점기엔 나라가 약해서, 나라가 없어서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 이상 약하지 않은 대한민국은 여전히 그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2015년 12월28일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서 피해 당사자의 의견이 철저히 배제된 채 일방적으로 최종적·불가역적 합의가 선언되었다.

결국 2016년 12월30일 피해자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한국 법원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소송을 제기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이들의 소장은 아직 일본 정부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소장을 송달해달라는 요청은 헤이그 송달 협약 제13조에 따른 일본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이행할 수 없다”며 소장 수령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헤이그 송달 협약에서 말하는 ‘주권을 침해’하는 상황에 해당하려면, 피해자들이 소장 송달을 통해 일본 법체계에는 없는 절차를 요구한다거나, 해당 소송 내용에 일본인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일본이 자행한 폭력의 피해자로서,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을 뿐이다. 이들의 소송과 관련한 절차에서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법체계가 충돌할 여지가 없다.

이미 2000년 9월 한국, 중국, 필리핀, 대만 4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5명이 미국 워싱턴 디시 연방법원에 일본 정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일본 정부는 송달을 거부하지 않고 소송에 응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주권침해 운운하며 송달을 거부하는 것은 12·28 합의를 계기로 더 이상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문제제기에는 대응하지 않겠다거나, 한국 법원의 재판이어서 무시하겠다는 태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즉, 일본 정부의 송달요청 거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의 표현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송달요청 거부의 근거로 드는 헤이그 송달 협약 제13조의 두번째 문장에는 오히려 ‘해당 소송을 인정하지 아니한다는 근거로 송달요청 이행을 거부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소송 내용의 옳고 그름은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장 송달을 거절하며 재판을 거부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배상청구권을 실현하기 위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만큼, 일본 정부는 이분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만일 일본 정부가 계속해서 송달을 거부한다면, 법원에서는 정부를 통한 외교적 방법으로 송달을 진행하고, 정해진 재판 절차를 신속히 이어나가야 한다.

12·28 합의가 발표된 지 2년 만에 외교부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가 합의의 문제점을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대통령은 협상에 절차와 내용적으로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을 인정하며 12·28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그사이 12·28 합의를 목격한 피해자 중 14명은 이미 ‘나라가 다시 우리를 돈 받고 일본에 팔아넘겼다’는 상처를 안고 세상을 떠났다.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32명뿐이고, 생존자 평균 연령은 90.7살에 이른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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