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통에디터 작년 한해는 기자들에게 ‘상실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기레기’라는 조롱이 봇물을 이뤘던 해였으니까요. 기사 댓글 보기가 두렵다는 기자들도 있더군요. 특히 중국 경호원의 한국 기자 폭행 사건에 대한 누리꾼 반응은 자못 충격적이었습니다. 자국 기자들이 외국에서 취재 도중 두들겨 맞았다는데, ‘기레기는 맞아도 싸다’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야속한 감정이 앞섰지만, 한편으로는 ‘언론이 얼마나 미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들에 대해 이런 격한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독자의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기레기 비판’의 밑바탕에는 뿌리 깊은 불신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비난과 조롱은 외피일 뿐입니다. ‘맞을 짓 했으니 맞았겠지’라거나 ‘원래 기레기들은 자기한테 불리한 건 안 쓰잖아’라는 투의 댓글이 줄을 잇는 상황을 속절없이 지켜보며 ‘불신의 벽’을 절감했습니다. 물론 기자들에게도 ‘좋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한때는 ‘신문에 났어’라는 말이 곧 ‘믿어도 돼’의 동의어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소수의 언론이 정보를 독점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 기억을 가진 고참 기자들에겐 더욱 뼈아프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언론은 불신의 아이콘으로 전락했습니다. 요즘 독자들은 기사의 의도가 뭔지, 입맛에 안 맞는다고 일부러 뺀 건 없는지, 교묘하게 왜곡하지는 않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합니다. 오히려 기자가 독자들에게 팩트체크를 당하는 일도 빈번합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은 수치로도 쉽게 확인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영국 옥스퍼드대학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와 함께 펴낸 <디지털 뉴스리포트 2017>을 보면, 우리나라의 뉴스 신뢰도는 조사 대상 36개국 가운데 꼴찌였습니다. ‘뉴스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23%에 그쳤습니다. 전체 평균(43%)의 절반 수준입니다. 언론인에 대한 신뢰도는 2010년 3.22점(5점 만점)에서 2016년 2.70점으로 낮아졌습니다(언론진흥재단 언론 수용자 의식조사). 기자들도 75%가 ‘국민들이 언론을 불신하고 있다’고 느낍니다(기자협회 여론조사).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미디어의 위기’는 사실 ‘신뢰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독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콘텐츠 유료화도, 멤버십 전략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우군’이 없는 상황에선 미디어 시장 정상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나 공적 지원 등의 요구도 ‘밥그릇 챙기기’로 매도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점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언론 전체의 생존이 달린 문제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물론 <한겨레>도 신뢰의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어느 해보다 혹독한 질책이 쏟아졌습니다. 창간 독자의 ‘절독 선언’ 메일을 읽을 때는 30년 지기한테서 절교 통보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습니다. 동료 기자들이 쓴 기사에 달린 ‘한걸레’, ‘기레기’ 등의 욕설 댓글을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평소 독자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굳건한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신뢰의 위기는 언론이 자초한 측면이 큽니다. 미디어 환경과 독자들의 뉴스 소비 행태가 달라졌는데, ‘올드 미디어’들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독자와 불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독자들을 계몽하려는 태도도 여전합니다. <한겨레>도 예외가 아닙니다.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기보다는 내부자의 논리에 갇혀 있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겠습니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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