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글을 읽으며 부끄러움과 참담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요컨대 ‘공정성’에 대한 집착은, 생존 불안과 탈락 공포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흔을 넘은 나는 이 지옥을 만들어낸 책임, 막아내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유시민씨는 어떨까.
사회비평가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에 대한 청년세대의 격한 반발을 두고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다. 기성세대와 달리 청년세대가 통일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 청년세대가 ‘공정성’에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주장 등이 많이 보였다. 유시민씨는 <제이티비시>(JTBC) ‘썰전’에 출연해 “북한과 얽힌 것도 없고 자유롭게 자란 청년세대에게는 국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이 중요하다”며 “젊은 세대의 공정성에 대한 예민한 감각은 되게 좋은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10여년 전 청년들에게 냉소적이던 그였기에, 저 발언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유씨는 국회의원이던 2005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대학생들의 정치 참여가 낮은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 인생인데 참여하지 않아서 10년 후에 사회에 발언권이 없으면 그 또한 정당한 것이고 참여를 많이 해서 이후에 사회를 주도하게 되면 그 또한 정당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참여하지 않으면 나중에 발언권이 없으니 알아서 하시기 바란다.” 같은 자리에서 청년실업과 관련해 이런 발언도 했다. “내가 하는 정치는 되도록이면 원칙적으로 가치실현을 위한 정치지, 누군가를 위한 정치는 안 한다. 취업에 관한 책임은 각자가 지는 거다.”(‘유시민 청년실업 발언 논란 확산’, <프레시안>) 어쨌든 지금 청년세대가 ‘공정성’에 특별히 예민하다는 지적은 흥미롭다. 그런데 왜 청년세대가 그런지에 관해 유시민씨는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에 비해 ‘공정성’에 유독 예민하다는 것은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유시민씨가 말하듯 “되게 좋은 것”일까? 먼저 확실히 해두자. ‘공정성’에 예민한 집단은 청년세대만이 아니다. 모든 세대가 예민해졌다. 청년세대가 ‘공정성’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있는 반면, 기성세대는 다른 가치(‘평화’ 등)에 좀 더 비중을 두었을 따름이다. 인식의 차이는 ‘공정성’에 예민한가 여부보다 가치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가에서 발생한 것이고, 그 차이가 딱히 엄청난 것도 아니다. 한편 과거 남북단일팀에 모두가 열광했지만 지금은 남북단일팀에 부정적인 기성세대들도 많아졌다. 이런 변화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로도 나타난다. 그보다 결정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인들은 왜 오늘날 ‘공정성’에 예민해졌는가? 최근 남북단일팀 논란에 관해 20대 청년들이 쓴 글을 여러 편 읽을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 중요한 실마리가 담겨 있었다. 그들은 남북단일팀이 어째서 자신의 ‘역린’을 건드린 이슈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다음과 같은 공통 인식이 추려졌다. “무한경쟁과 각자도생 사회에서는 작은 차이가 생존과 탈락을 가른다. 공정성에 극도로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이스하키 선수들과 자신을 동일시했기에 분노한 것이다.” 이들의 글을 읽으며 부끄러움과 참담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요컨대 ‘공정성’에 대한 집착은, 생존 불안과 탈락 공포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흔을 넘은 나는 이 지옥을 만들어낸 책임, 막아내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유시민씨는 어떨까. 그는 국회의원과 장관까지 역임했던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였다. 나 같은 무명소졸보다 작금의 사회가 만들어지는 데 훨씬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나는 기억한다. 참여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대선 공약이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송두리째 내팽개쳤던 것을. 비정규 노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부동산 대책은 최악의 재앙이 되었으며, 부의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졌던 것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취업에 관한 책임은 각자가 지는” 각자도생 사회는 만인이 ‘공정성’을 부르짖는 사회가 됐다. 우리나라는 15년간 일해온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려 하자 “무임승차 웬말이냐”라는 데모가 벌어지는 ‘공정사회’가 되었다(‘공정함에 집착하는 불공정 사회’, <경향신문>). 또한 우리나라는 계단강의실에 접근할 수 없는 장애인 학생이 강의실 변경을 요청하자 대학교 게시판에 “비양심 민폐장애인” 때문에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고발이 줄줄이 걸리는 ‘공정사회’가 되었다(‘휠체어 학생에…계단강의실 고집한 대학생들’, <조선일보>). 이 ‘공정성’에서 슬픔도 노여움도 느끼지 않는다면, 그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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