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에디터 남한 예술단의 평양 공연이 열린 뒤 감동적인 무대에 대한 리뷰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소셜 미디어에서 압도적인 화제가 된 건 역시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과 그룹 멤버 아이린, 그리고 이들과 함께한 김정은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1일 공연을 관람한 뒤 남한 예술단과 찍은 단체사진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옆자리의 아이린 부분만 잘라서 “이거 실화냐”는 태그와 함께 떠들썩하게 공유되었다. 시진핑 등 주요 인사들과 악수하는 사진에서는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던 김 위원장이 레드벨벳 멤버와 악수할 때는 몸을 숙이고 웃는 사진을 나란히 비교하는 ‘짤’들이 돌아다니는가 하면 공연이 끝나고 남한 예술단을 격려하는 김정은 위원장을 뒤쪽에서 빤히 쳐다보는 아이린의 동영상 ‘짤’도 화제다. 조용필, 이선희 등 여러번 북한 공연을 하고 북한에서도 사랑받는 가수들보다 레드벨벳이 화제가 된 건 이들이 지금 가장 ‘핫’한 가수여서가 아니다.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선 김정은과 아이린의 외모가 보여주는 그 불균형의 간극만큼이나 벌어졌던 남북관계가 자석처럼 확 당겨지는 듯한 그 드라마틱한 순간이 생뚱맞으면서도 신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떠도는 짤들을 보면서 나도 피식피식 웃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미국이 대북 선제타격론을 앞세우며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살얼음판에 서 있던 게 불과 몇달 전인데 남한 아이돌 스타 옆에서 웃는 북한 최고 지도자라니, 때마침 사진이 찍힌 만우절에나 어울릴 법한 농담 같다. 이번 남한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보면서 문화예술이 지닌 힘에 대해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무대에서 남북 가수들이 손을 잡고 함께 노래하는 훈훈한 모습이나 무대가 무대인지라 그 노랫말에 더 울컥해지는 강산에의 ‘라구요’ 공연이 주는 감동이 전부가 아니다. 예상치 못했던 김정은-아이린 짤의 ‘낙수효과’가 평양 공연의 무게감만큼이나 커 보인다.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반문하거나 북한 체제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세대들에게도 이런 영상이나 이미지들은 직관적으로 시선을 모으는 힘이 있다. 우선은 불균형이나 부조화가 주는 유머 같은 요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재미와 웃음의 바닥에는 전쟁과 이산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이라도 무의식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불안감을 느슨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물론 이런 이미지 한두 컷을 통해 북한에 대한 불신이 해소될 수는 없다. 그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미지들을 보면 삼중사중으로 잠금장치가 되어 있던 심리적 철벽에 미세하게 균열이 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문화교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명분이나 이념과 상관없어 보이는 남한의 젊은 예술인들이 한없이 완고해 보이는 북한 인사 옆에서 씩 웃고 격의없이 대화하는 장면들이 더 많이 노출될수록 미세한 균열들은 조금씩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쌓이는 서로 간의 익숙함이야말로 북한 핵동결 선언이나 남북 평화합의 같은 엄청난 모멘트들보다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까. 이번 남한 예술단의 두차례 공연 기사 준비를 푸닥거리처럼 했다. 통신 사정 탓인지 평양공연공동취재단의 취재 기록이 신문 제작 마감시각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헐레벌떡 기사를 완성해야 했다. 심야에 일을 마무리하면서 동료들과 이런 농반진반의 대화를 했다. “이 푸닥거리를 가을에 또 해야 돼?”(김 위원장은 ‘봄이 온다’는 예술단 공연 제목에 빗대 가을에 다시 만나자고 제안했다) “계절마다 하게 되는 거 아냐?” “(공연 교류를) 너무 자주 하게 돼서 단신으로만 짧게 처리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농담처럼 던졌지만 진짜 그런 날이 오게 되기를, 더 많은 ‘짤’들로 웃게 되기를 바란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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