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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루스벨트가 받은 노벨상, 트럼프가 받을 노벨상

등록 2018-05-08 09:30수정 2018-05-08 19:15

정의길
선임기자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당시 러일전쟁 종결을 중재한 공로이다. 100년이 넘게 지나서 도널드 트럼프가 북핵 해결 가능성으로 노벨상 후보로 추천됐다.

역사는 얄궂다. 러일전쟁 종결을 중재한 루스벨트의 공로는, 미국과 세계의 패권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제국주의 세력 부상과 동아시아 개입, 한반도 분할의 지정학을 만든 계기이다. 트럼프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루스벨트가 문을 열고 한 세기 이상 지속된 이런 분쟁과 대결의 동아시아와 한반도 지정학을 재편한 공로일 것이다.

루스벨트의 수상에 세계 여론은 비웃었다. 루스벨트는 쿠바와 필리핀을 빼앗은 미국-스페인 전쟁의 열렬한 주창자였고, 필리핀의 민중반란을 잔인하게 진압하는 등 당시까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공격적인 대외팽창 정책을 추진했다.

노벨위원회도 ‘제국주의자이자 평화 중재자’라는 제목의 루스벨트 약력에서 “노르웨이 좌파들은 루스벨트가 미국의 필리핀 정복을 완수한 ‘군사 미치광이’ 제국주의자라고 주장한다”며 “스웨덴 신문들은 알프레드 노벨이 무덤에서 뒤돌아 누울 것이고, 노르웨이가 그 전해 스웨덴에서 분리된 뒤 강력한 친구들을 얻기 위해 루스벨트에게 노벨상을 수여했다고 썼다”고 기록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당시 스웨덴에서 독립한 노르웨이에 노벨평화상 선정 권한을 줬는데, 노르웨이가 미국에 잘 보이려고 루스벨트에게 노벨상을 줬다고 비꼰 것이다.

그래서 루스벨트의 노벨상 이면은 어둡다. 러일전쟁은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전쟁만은 아니었다. 일본 뒤에는 영국과 미국이 있었다. 이 두 나라가 일본을 내세워 러시아와 싸운 전쟁이다. 당시 러시아는 동아시아에서 남하해 만주를 장악했다.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는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던 영국은 동맹을 맺지 않던 ‘영예로운 고립’ 정책까지 파기하며, 1902년 일본과 영일동맹을 맺었다. 태평양을 건너 서진하던 미국도 1903년 일본과 함께 청에 통상조약 개정을 요구하면서 만주에서 문호개방을 촉구해 러시아를 겨냥했다.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영국은 러시아 발트함대가 동해로 가는 것을 방해했고, 미국은 일본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했다. 미국은 러일전쟁의 전세가 기운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한반도를 차지하고, 극동 평화 유지를 위한 미-영-일 동맹 유지’를 약속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전쟁에 이긴 일본의 요구가 커지자, 전쟁배상금을 포기시키고 사할린의 남부만을 할양하는 포츠머스조약을 중재했다.

루스벨트의 이 노벨상 ‘공로’는 동아시아에서 러시아나 중국이라는 유라시아 대륙세력들을 막는 데 일본을 후원하는 한편 제어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원형이 됐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는 주변 열강의 역관계에 따라 한쪽에 완전히 편입됐다가 반분됐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1990년을 전후해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을 승인하고 수교했으나,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수교를 거부했고 북한은 핵개발에 나섰다. 40년 가까이 지속된 북핵 문제의 배경이자 본질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의 판문점 선언, 트럼프가 수락한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제가 어른거린다. 그 본질은 미국과 일본의 북한 승인과 수교이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남북한 및 미·중·러·일 주변 4강이 서로를 인정하며 안정적인 세력균형 체제를 이루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루스벨트와 트럼프는 대조적이고, 비슷하다. 뉴욕의 부호 출신에다가 공격적인 마초 성향이다. 기존의 워싱턴 주류 질서에 도전한 ‘이단아’이다. 루스벨트는 대외적으로 제국주의자로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당시 미국 사회의 부패와 독점자본을 규제한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국내에서는 인종주의적이고 반다자주의 접근으로 비난받는다. 하지만 대외정책에서는 선악 개념에 기초한 미국의 공격적인 이상주의에 회의를 보인다. 그가 북한과 대타협에 나서려는 배경이자 이유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트럼프가 루스벨트 이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서의 대결과 분쟁을 공존과 협력으로 바꾸는 출구를 연다면, 루스벨트도 받은 노벨상을 그라고 왜 못 받겠는가.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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