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북-미 정상회담 살리기 / 박현

등록 2018-05-27 18:05수정 2018-05-27 18:59

박현
콘텐츠2부문장

북-미 정상회담 관련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연으로 나서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초반부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연으로 등장한 중반부가 되면서 마치 ‘트럼프 쇼’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트럼프는 스스로 ‘거래의 달인’이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그 거래의 기술이란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단순하다. 자신의 최대치 목표를 세운 뒤 이를 쟁취하기 위해 온갖 허풍과 협박을 동원하고, 맘에 맞지 않으면 아예 판을 뒤집기도 한다. 상대방을 충격과 혼란에 빠뜨려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이다. 뉴욕 맨해튼의 부동산 거래에서 단련된 수법이다.

우리는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서 이를 경험했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한-미 에프티에이 폐기 카드를 꺼내들어 기선을 제압하더니, 협상 마지막엔 철강 보복관세라는 별개 이슈까지 꺼내드는 현란함을 연출한 뒤 이익을 톡톡히 챙겨 갔다. 북핵 협상에서도 이런 익숙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그는 정상회담 취소라는 극단적인 카드까지 꺼내들어 최대한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의 이런 ‘원맨쇼’를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입법·사법·행정부의 ‘견제와 균형’으로 꽃피운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도 트럼프의 독불장군식 행보에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는데, 국제정치 무대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정상 간의 회담 약속을 마치 부동산 거래를 하면서 가격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계약을 취소하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뒤집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트럼프라는 괴짜 정치인이 등장했기에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가 눈앞에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를 워싱턴에서 3년간 지켜본 바로는, 미국의 기성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 중 그 누구도 북한과의 협상에 주도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다. 실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핵 없는 세상’을 외치며 노벨평화상을 ‘선불’로 받았던 오바마마저도 ‘전략적 인내’라는 그럴듯한 수사를 내세우며 수수방관했고, 그러는 사이 북한의 핵능력은 강화됐다. 그런 만큼 천신만고 끝에 마련된 이번 기회를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미국과 북한이 더 진지한 태도로 협상에 임하도록 한국과 중국이 협상 과정에 깊숙이 개입할 필요가 있다.

26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문 대통령이 북-미 협상의 ‘촉진자’로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를 할 경우 적대관계 종식 및 경제협력에 나설 것’이라는 트럼프의 메시지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했고, 김 위원장으로부터는 ‘완벽한 비핵화’ 의지 확인과 함께 ‘체제 안전 보장'에 대한 걱정을 청취해 미국 쪽에 전달했다. 미국과 쿠바가 반세기 만의 적대관계를 청산할 때 교황청이 중재자로 나섰던 것처럼, 오랜 기간 적대적 관계였던 국가 간의 해빙에는 ‘정직한 중재자’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서로가 상대방의 진짜 의도를 반신반의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힘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에 중국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참여하게 해 ‘균형추’ 구실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일관되게 신뢰 구축 조처를 취해야 한다. 기존 북-미 협상의 실패 책임이 어느 쪽에 있든지 간에, 미국엔 북한에 대한 불신 분위기가 가득 차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만에 하나 사전 의제 조율이 되지 않아 이번에 회담이 무산되더라도 핵실험장 폐기와 같은 신뢰구축 조처를 이어가야 한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나 협박에는 당당하게 대응해야겠지만 불필요하게 과장된 벼랑끝 전술을 펴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hyun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