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중국과 일본을 어찌할 것인가

등록 2018-05-28 18:47수정 2018-05-28 19:35

정의길
선임기자

“열강 사이의 세력투쟁이 기본적인 현실인 국제관계의 역동적 세계에서, 작은 완충국가들의 궁극적 운명은 잘해도 위기 속에 사는 것이다.”

지난 주말 한반도에서 벌어진 사태는 미국 지정학자 니컬러스 스파이크먼의 이 말을 실감케 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은 다시 열렸으나, 회담 뒤에도 한반도가 주변 강대국에 의해 위기로 치달을 개연성은 여전하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열전이 재현되지 않은 것은 일종의 ‘공포의 균형’ 체제 때문이다. 한국전쟁의 경험은 남북한뿐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에 한반도에서 열전 재발은 모두를 패자로 만들 수 있다는 현실인식을 심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는 관련 세력들이 정립하는 일종의 세력균형 체제가 작동했으나, 문제는 이 세력균형 체제가 적대와 공포에 토대를 뒀다는 것이다.

미-일 진영과 중-러 진영은 한반도의 남북한 적대적 분단체제를 이용해 동북아에서 상대방의 세력확장을 막는 한편 군비증강 등 자신들의 내부 정치적 수요를 충족했다. 누구도 한반도에서 열전을 원하지는 않으나, 상대에 대한 적대와 공포는 원하고 필요로 하는 체제였다. 그 결과, 한반도는 항상적인 대결과 위기 속에서 지내야 했다.

북-미 정상회담은 이 ‘공포의 균형’ 체제를 끝내려는 입구에 불과하다. ‘공포의 균형’이 아닌 ‘평화의 균형’ 체제를 항구적으로 수립하려면 미국과 북한의 화해만으론 가능하지 않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까지 한반도에서 앞으로 건설할 새로운 세력균형 체제에 당사자로 참가해야 하고, 참가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 ‘공포의 균형’ 체제의 국제법적 표현인 정전체제의 한 당사자인 중국의 입장과 앞으로의 역할은 미국만큼이나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27 판문점 선언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당연히 이 표현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서 자신이 빠질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왜 이런 표현이 등장했는가를 두고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애초에 북한은 남북미 3자를 요구했으나, 한국 쪽이 남북미중 4자회담이란 표현을 추가했다는 해석도 있다. 북한의 전통적인 외교노선을 고려한다면, 한반도의 새로운 체제 수립에서 그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어야 한다. 청와대 쪽은 한국과 중국, 미국과 중국은 이미 수교를 해서 적대관계가 해소됐다며, 종전선언은 남북미 3자가 하고 평화체제 구축에는 중국이 참여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어쨌든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 뒤 돌연 중국을 다시 찾아 시진핑 주석과 2차 회담을 했다. 이를 놓고 트럼프는 북한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지적하며, 중국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직접적인 언급을 했다. 이는 그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로까지 이어졌다. 북한을 둔 중국과 미국의 샅바싸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북한의 줄타기 외교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살아나자, 내친김에 싱가포르에서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까지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만약 이런 방안이 북-미 정상회담 흔들기 전술을 통해 장악력을 키운 미국 쪽이 주도하고 중국은 동의하지 않은 것이라면, 싱가포르 이후 전망에 도움을 줄지는 의문이다.

또 하나의 우려는 일본이다. 일본은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문제에서 계속 소외되자 미국을 움직이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일본은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주도할 처지는 아니나, 이를 방해할 능력은 여전히 충분하다. 그리고 북한으로서도 일본은 자신들의 경제개발에 필요한 가장 큰 동력이다. 일본을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건설적 당사자로 참가시키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한반도에서 공포의 균형 체제를 끝내고 평화의 균형 체제로 가려면 ‘우리 민족끼리’도 안 되고, ‘한-미 동맹’만으로도 안 된다. 한반도의 남북한이 주변 4강의 세력을 위협하는 교두보가 아니라, 그 충돌을 방지하는 완충지로서 남을 것임을 남북한과 주변 4강이 합의하고 보장해야 한다. 남북한이 확실한 화해공존 체제를 만들어야 이 과업을 수행할 수 있다.

Eg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가상자산 과세,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1.

가상자산 과세,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범죄·코믹·판타지 버무렸다…볼리우드식 K드라마의 탄생 2.

범죄·코믹·판타지 버무렸다…볼리우드식 K드라마의 탄생

우크라이나 전쟁발 가짜뉴스에 돈 내야 할 한국 3.

우크라이나 전쟁발 가짜뉴스에 돈 내야 할 한국

한 대표, ‘당게’ 논란 연계 말고 ‘김건희 특검법’ 당당히 찬성해야 [사설] 4.

한 대표, ‘당게’ 논란 연계 말고 ‘김건희 특검법’ 당당히 찬성해야 [사설]

감사원장 탄핵 추진에 “헌법질서 훼손” 반발하는 감사원, 어이없다 [사설] 5.

감사원장 탄핵 추진에 “헌법질서 훼손” 반발하는 감사원, 어이없다 [사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