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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만열 칼럼] 돌아오지 못한 순국 영령과 산 자들의 책무

등록 2018-06-21 18:11수정 2018-06-22 14:35

하북성 호가장에서 순국한 네 분(박철동·손일봉·이정순·최철호)은 모두 20대로 고향에서 맞을 후손도 없어 이곳 마을에서 청명 때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 동행했던 학생들과 이들의 산소에 벌초할 때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그들에게 조국 있음이 무슨 소용이랴! 나라가 있다면 의당 이들부터 챙겨 그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하는 것 아닌가. 6월은 추모보은의 달이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몇 해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정신답사단과 함께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근교에 있는 윤봉길 의사 암장지를 둘러보고 마음이 많이 상했다. 상해에서 거의(擧義)한 윤 의사가 왜 이곳까지 와서 쓰레기 더미 속에 암장되었는가.

1932년 4월29일 상해 홍구공원 의거 때 단상의 시라카와 총사령관과 노무라 해군함대사령관, 우에다 육군 제9사단장, 시게미쓰 주중일본공사 등이 사상을 입었다. 윤 의사는 5월2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형 집행이 미뤄졌다. 상해에 파견된 일본 육군 9사단 본부가 있는 가나자와로 옮겨 사형하겠다는 것이다. 윤 의사는 11월18일 오사카로 호송돼 육군위수형무소에 한달간 수감되었다가 12월18일 오사카를 출발해 가나자와의 위수구금소로 이감돼 하룻저녁을 지내고 그 이튿날 미쓰코지 산속 ‘육군공병작업장’에서 아침 7시40분에 사형되었다. 10m나 높은 언덕에 거적을 깔고 십자가 형틀에 두 팔을 얽어매고 무릎을 꿇게 한 뒤 두 명의 사수가 집행했다. 답사단 일행이 찾은 윤 의사의 암장지는 노다산의 육군묘지 관리사무소 옆 쓰레기장으로, 순국한 곳에서는 약 3㎞ 떨어진 곳이다.

1946년 3월 유해봉환단이 일본에 도착해 서상한·박열·이강훈의 도움을 받아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세 의사의 유해 발굴에 나섰다. 이들은 일본인 담당자들에게 유해 발굴에 협조하지 않으면 이 근처의 무덤들을 다 파헤쳐 조사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세 의사의 유해를 나가사키, 도쿄, 가나자와에서 발굴한 후 도쿄로 모셔와 수백명의 교민들이 일본 왕궁 앞에서 만세를 불러 시위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대한해협을 건넌 뒤 ‘삼열사봉안위원회’ 김구 위원장과 유가족이 함께한 가운데 6월16일 부산을 출발해 상경하는데, “차가 이르는 정거장마다 거룩한 유골을 배례하고자 경건한 가운데에도 진정 못해 감격에 흐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앞서 4월29일에는 공산당(박헌영)을 포함한 국내의 각 정당 거두와 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윤 의사의 ‘영웅적 거의 기념대회’를 치렀다. 삼의사의 유해는 7월6일 성대한 국민장으로 효창원에 모셨다.

글 처음에 삼의사의 유해 봉환을 소개한 것은 해방 직후 귀국한 백범과 독립운동가들이 순국선열들의 봉환에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보기 위해서다. 해방이 되자 그들은 자신들만 살아 돌아온 것이 죄스러웠던지, 먼저 순국한 동지들의 유족을 방문했고, 유해 봉환은 산 자들의 최소한의 의무로 생각했다. 국립묘지를 조성하기에 앞서 효창원이 순국열사들의 묘원으로 조성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노력한 백범이었던 만큼 효창원 삼의사 묘원 옆에 안중근 의사의 허묘를 만들었고, 1948년 4월 남북협상 때에는 4김 회담 중 안중근 의사의 유해 봉환 문제도 제기했다.

해방 직후 북한은 중공을 지원했고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1949년)되자 중공은 실전을 쌓았던 2개 사단 규모의 조선족 군대를 북한에 넘겨주어 6·25 때 남침의 주력부대가 되었다. 또 중공이 1960년대 중국 동삼성 지역의 유적을 발굴할 때, 총리 저우언라이는 고대 유물은 ‘조선’에 넘겨주도록 지시했을 정도로 양국관계는 돈독했다. 이런 관계로 보아 북한이 당시 뜻만 있었다면 여순감옥 근처에 매장되었을 안 의사의 유해는 쉽게 발굴·봉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 의사의 유해 봉환 문제는 그 뒤 우리 정부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안 의사가 황해도 해주 출신이어서 그의 유해 발굴은 북한과도 관계가 있었다. 북한은 그 연고권을 내세워 남쪽의 단독 유해 발굴에 반대했다. 남북한은 2005년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안 의사 유해 발굴을 공동 추진하기로 하고 실무협의를 거쳐 공동으로 여순감옥 일대를 조사하여 그 서쪽 원보산 지역을 발굴 대상지로 지목했다. 2008년 3~4월 이 지역을 29일간 공동발굴했으나, 유해는 발굴되지 않았다. 2010년 순국 100주년을 맞아 ‘안중근의사유해발굴추진단’을 구성하고 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지 관련 자료 조사 및 매장 추정지역 현지조사 등을 하면서 리커창 총리 등 중국 당국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안 의사 유해 발굴은 남북한과 중국, 무엇보다 당시 기록을 남겼을 일본의 협조도 필수적이라고 본다.

6월은 추모보은의 달이다. 현충일(6월6일)과 6·25는 이 뜻을 더욱 간절하게 한다. 남의 나라 이야기여서 조심스럽지만, 싱가포르 ‘조미정상회담’에서는 핵 문제가 중요한 의제였음에도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미군의 유해 송환을 합의서 제4항에 넣었고 곧 유해 송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6·25 때의 유해 문제는 미국뿐만 아니라 남북한과 중국에도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유해가 제대로 발굴, 봉환되지 않는 한 전후 처리가 완결되었다고 할 수 없고, 종전이라 하더라도 전사자 유족들의 상처는 다 씻기지 않는다. 조국을 지키려고 했건, 우의나 자유를 지키려고 했건, 전사자는 가족과 나라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산언덕에 조성된 하와이 국립묘지든, 아늑한 동작동 묘지든 유해는 조국과 가족의 품에서 편히 쉬게 해야 한다. 이것이 추모보은의 출발이다.

그동안 정부도 독립유공자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선열들의 공훈을 기리고 그 숭고한 애국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데 애써왔다. 백범이 1946년 삼의사를 봉안하여 민간 차원의 길을 연 데 이어, 정부는 1975년경 장인환 의사의 유해 봉환에서 시작하여 40여년 동안 계속하여 국외 각지에서 총 134위의 독립유공자를 국립묘지 등으로 봉환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이를 추진한 정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독립운동 국외사적지를 돌아보면 아직도 더 열심히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중국 길림성 화룡현 소재 대종교 삼종사(나철·김교헌·서일)의 묘역이 있는데, 가서 볼 때마다 보존 상태가 퇴색하고 있다. 현지에 유해를 모시는 것도 좋지만 생전에 국외에서 풍찬노숙했던 어른들은 조국의 산하에 따뜻하게 모시는 것이 후세가 덜 부끄러울 것이다. 하북성 태항산 지역은 조선의용대 활동 지역. 윤세주·진광화 열사의 무덤은 중국 당국이 열심히 돌보고 있다. 그러나 하북성 호가장에서 순국한 네 분(박철동·손일봉·이정순·최철호)은 모두 20대로 고향에서 맞을 후손도 없어 이곳 마을에서 청명 때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

동행했던 학생들과 이들의 산소에 벌초할 때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그들에게 조국 있음이 무슨 소용이랴! 나라가 있다면 의당 이들부터 챙겨 그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상해 송경령능원(外籍人墓園) 안 동농 김가진의 묘소는 이젠 그 위치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후손들이 발을 구르고 있다. 일제는 ‘한일합병’ 때 한말 고관이었던 그에게 작위를 수여했다. 그러나 그는 대동단 총재 신분으로 임시정부에 망명하여 순국했고 임정은 성대하게 장례를 치렀다. 전과(前過) 후공(後功)의 경우 포상하는 원칙에 비춰 보더라도 그는 유공자로 포상되어야 하지만 아직 서훈도 유해 봉환도 이뤄지지 않았다.

추모보은의 달을 맞아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납북 인사들의 유해 문제다. ‘판문점선언’에 기초하여 먼저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유족의 성묘를 허용하든가, 이들의 유해를 유족의 품에 안겨주든지 해야 한다. 또 비무장지대(DMZ) 출입이 허용될 경우 맨 먼저 6·25 때 희생된 젊은이들의 유해를 국적 가리지 않고 수습해야 한다. 연고를 알 수 없는 유해들은 무명용사탑이라도 만들어 그들의 혼백을 마땅히 위로해야 한다. 이것이 남북 해원(解寃), 세계 평화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길이다. 이게 이념과 체제를 달리한다 하더라도 사람의 후예들이 갖춰야 할 예의가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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