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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종규의 마주보기] ‘굴뚝 미디어’라서 죄송합니다

등록 2018-06-28 18:46수정 2018-06-28 19:07

이종규
콘텐츠1부문장

6월 한 달간 <한겨레> 1면에는 세 건의 ‘알림’이 실렸습니다. 셋 다 지면 제작 마감시간 때문에 주요 뉴스를 싣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는 6·13 지방선거 개표 결과였고, 나머지 두 건은 러시아월드컵 경기 결과였습니다.

지방선거일에는 예상과 달리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박빙의 승부가 펼쳐져 지면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른 지역은 일찌감치 승부가 갈렸는데, 경남에선 마감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확실한 우열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표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당선 확실’이라고 썼다간 밤새 당락이 바뀌어 다음날 아침 지면에 대형 오보를 낼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접전 중’이라고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신문이 배달되는 아침이면 이미 당락이 결정돼 있을 테니까요. 더욱이 경남은 이번 선거에서 최대 관심 지역이었습니다. 마감시간과 사투를 벌인 끝에 서울 등 일부 지역 배달판에 가까스로 ‘당선 확실’ 기사를 실을 수 있었습니다. 월드컵 조별리그 스웨덴전과 독일전도 경기가 밤늦게 끝나는 바람에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의 배달판에 기사를 싣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마감시간 탓에 애를 태울 때마다 신문산업이 꼭 ‘굴뚝산업’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굴뚝산업은 전통적인 제조업을 일컫는 말입니다.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과 대비되어 주로 쓰입니다. 스마트폰만 켜면 실시간으로 뉴스를 볼 수 있는 시대에, 전날 정해진 시간 안에 들어온 기사만으로 지면을 제작해 다음날 아침 배달하는 시스템이 신문쟁이인 제가 봐도 참 구닥다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사이 들어온 따끈따끈한 소식을 독자들에게 전해드리지 못해 안타까울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전국의 독자들에게 아침 일찍 신문을 보내드리려면 마감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문사 내부에선 마지막까지 기사를 실으려는 취재 부서와 제시간에 신문을 발송하려는 유통 부서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곤 합니다. 둘 다 독자 서비스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만, 아무리 공들여 신문을 만들더라도 배달이 안 되면 아무 소용이 없기에 신문사들은 대체로 ‘기사 하나 더’보다는 ‘제시간에’를 우선시하는 편입니다.

미디어의 굴뚝산업이라 할 수 있는 신문이 이처럼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갇혀 있는 사이,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뉴스 소비에서 시공간의 장벽을 완전히 허물었습니다.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도 최신 뉴스를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문을 받아보는 독자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뭔가 다른 기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왠지 온라인보다는 더 신뢰가 가서 신문을 본다는 이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이슈가 잘 정리돼 있어서 사안의 전모를 파악하기 편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기사가 낱개로 유통되는 온라인과 달리, 신문은 ‘편집의 묘미’가 있어서 언론사가 지향하는 가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습니다. 실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5년 신문 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신문에 대해 ‘정확하다’고 답한 비율이 62.8%인 반면, 인터넷 기사는 37.4%에 그쳤습니다. ‘기사를 읽고 난 뒤 더 기억에 남는 쪽’을 묻는 질문에도 신문(67.8%)을 꼽은 사람이 인터넷(32.2%)보다 갑절 이상 많았습니다.

‘뉴스 홍수’ 시대를 맞아 신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미디어업계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에 비해 느리고 불편한데도 굳이 종이신문을 찾는 독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날 독자들이 무엇을 궁금해하고,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겠습니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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