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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트럼프와 푸틴의 세계질서를 위한 변명

등록 2018-08-01 15:00수정 2018-08-02 15:18

트럼프는 미국 주도의 기존 세계질서를 떠받치는 동맹을 유지하는 부담을 지기보다는 적과의 타협을 기조로 하는 대외정책을 선보인다. 푸틴은 미국이 러시아의 영향권을 인정한다면 협조하겠다는 의사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냉전 이후 세계질서에 변화를 주려 하고 있다. 미국은 전세계적인 개입을 줄일 테니 러시아는 협조하라는 것이다.

시리아 내전을 예로 들자. 트럼프는 그 내전에서 미 군사력을 빼면서 미-러가 내전 당사자들을 타협시키자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2011년부터 지금까지 내전 당사자들을 협상시키려는 노력과 시도를 펼쳐왔다. 내전 초기인 2012년 6월 유엔 주재로 열린 제네바 회담이 대표적이다. 시리아 정부와 반군 세력, 그리고 미국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참가한 이 회의에서는 완전한 행정권을 갖는 임시정부 구성 필요성에 합의하는 공동성명을 유엔 특사인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이 발표했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은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임시정부 참가를 반대하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애초 시리아 내전은 아사드 정부의 독재에 저항하는 반정부 시위를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 수니파 아랍국가들이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중동에서 사우디는 최대 적인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우호적인 시아파의 분파 알라위파인 아사드 정권을 차제에 붕괴시키겠다는 의지였다. 미국도 동조했다. 내전의 한 당사자인 아사드 정부를 인정 못한다면 내전의 평화적 해결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이다.

그 후 내전에서는 득세하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격퇴가 급선무가 되면서 평화회담은 무의미해졌다. 이란―시리아의 아사드 정권―레바논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중동의 시아파 연대를 지원하는 러시아도 직접적 군사개입을 하며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슬람국가가 패퇴당하고, 아사드 정부군 세력이 완연히 회복된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시리아에서 실질적 지분을 가진 세력들이 서로를 인정하는 타협이다. 미국은 아사드 정권의 실체를 인정하고, 러시아는 수니파 아랍국가들이 우려하는 이란의 영향력 확장을 자제시켜야 한다.

트럼프는 러시아와 협조하는 시리아 내전 해결을 밝혀왔다. 트럼프는 지난 4월 이슬람국가 격퇴 이후로는 시리아에서 미군의 임무를 연장시키지 않겠다며 철수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7월16일 헬싱키에서 열린 푸틴과의 첫 일대일 정상회담에서 시리아 내전 등 중동분쟁 해결 협조를 주요 의제로 삼았다.

미국에서는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에 약점을 잡힌 트럼프가 미국과 동맹국들의 연대와 이익을 팔아먹고 있다는 비난이 들끓는다. 유럽 등지의 전통적 동맹국들에는 무역전쟁과 방위비 증가 등으로 구박하며 동맹을 훼손하면서, 주요 가상 적국인 러시아에는 유화적이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내외 정책은 좌충우돌이다. 국내에서는 부자 감세와 환경규제 철폐, 인종주의적인 이민법 강화 등 보수반동적인 정책을 펼친다. 대외적으로도 미국의 단기적 이익을 챙기려는 무역전쟁,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이란국제핵협정 파기, 이스라엘 수도로 예루살렘 공식화 등 갈등과 분쟁의 격화를 부추긴다. 그러면서도 북한과는 정상회담을 하고 중국과의 지정학적 대결 지양, 러시아와의 협조를 내걸며 새로운 타협 질서도 조성한다.

트럼프는 미국의 기존 세계질서가 자신의 지지층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그는 미국 주도의 기존 세계질서를 떠받치는 동맹을 유지하는 부담을 지기보다는 적과의 타협을 큰 기조로 하는 대외정책을 선보이고 있다. 푸틴은 미국이 러시아의 전통적 영향권을 인정한다면 협조하겠다는 의사이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의외의 인물이 트럼프-푸틴 회담을 정력적으로 옹호했다.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하는 ‘리버테리언’인 랜드 폴 상원의원은 <피비에스>(pbs)와의 회견에서 “유럽의 군사력은 러시아보다 13배나 크다. 이에 더해 미국을 합치면 30~40배다. 미국은 군사비를 나머지 상위 10개국을 합친 것보다 많이 쓴다”며 러시아를 주적으로 설정해 대결하는 게 무슨 의미냐고 일갈했다.

트럼프의 대외정책이 옳은 방향인지, 관철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들고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명암이 교차하는 기존의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 트럼프는 분명 도전하고, 푸틴은 화답하고 있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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