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동맹 유지에 대한 부담을 지기보다는 적과의 화해’라는 트럼프주의를 우리는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이상주의로 평가할 한가한 처지가 아니다. 북-미 접근을 추동한 트럼프주의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생사가 판가름 난다. 트럼프의 선거 승패는 한반도에 폭풍을 야기할 것이다. <뉴욕 타임스>에 미국 행정부 안에 반트럼프 저항세력이 있다는 익명의 ‘고위 관리’ 기고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내부 저항과 반발이 변곡점에 올랐음을 말해준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트럼프의 거취를 둔 헌법적 위기가 어른거린다.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 거칠고 충동적인 언행도 원인이나, 그가 펼쳐온 정책과 노선이 근원이다.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명암이 교차한다. 트럼프가 그 이전 미국 대통령이 꺼리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하고, 북-미 관계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워싱턴의 주류들은 트럼프가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설계하고 주도한 국제질서를 허물면서 미국의 장기적 국익과 패권을 자해하고 있다고 비명을 지른다. 나토 등 동맹 및 자유무역 질서라는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약화와 무력화가 트럼프 비판의 핵심이다. 트럼프와 지지층은 미국 주도의 동맹과 자유무역 질서가 이제는 미국이 그 유지 비용만 부담하고 동맹이나 경쟁국만 이익을 보는 질서라고 인식한다. 미국 시장 개방을 전제로 한 자유무역 질서로 미국의 무역적자는 2017년에 5660억달러로 늘어났다. 특히 중국은 미국에 대해 375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동맹과 경쟁국들이 모두 미국이 주도하는 이런 국제질서에서 이익을 보며 성장하는 반면, 미국 내의 제조업 등은 몰락해서 중서부 및 내륙의 백인 중하류층은 경제적 지위가 하락하며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취임 뒤 추진한 의제는 우방과 경쟁국에 대한 ‘무역전쟁’으로 불리는 미국의 무역적자 축소, 미국이 주도하던 각종 다자주의적 국제 제도 및 조약 철폐, 그리고 기존 동맹의 약화 및 해체다. 워싱턴의 주류들은 이를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해체라고 명명한다. 명암이 교차한다. 파리기후협정 탈퇴에서 보듯, 좀더 나은 인류의 가치와 미래를 위한 국제연대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있다. 그의 반환경, 반이민, 인종주의적 색채의 국내 정책 역시 지금까지 쌓아온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퇴행시킨다. 하지만 트럼프 및 그 지지층에서는 미국이 주도한 다자주의적 무역 및 동맹에 기반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미국 상층부의 이익에만 봉사하며 미국의 양극화를 초래한 세계화주의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그 질서 안에서 경쟁국들과 미국의 상층부만이 이익을 보는 질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군사 주축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보자. 나토는 2차대전 뒤 소련의 위협을 봉쇄하려고 결성된 동맹인데, 소련이 붕괴된 뒤에도 동유럽까지 확장됐다. 이는 미-러 관계 악화의 근원이기도 하다. 미국에 막대한 무역흑자를 보는 독일 등 유럽을 지켜준다는 나토의 방위비를 미국은 여전히 73%나 부담하고 있다. 미국에서 소외된 트럼프 지지층으로서는 이유 있는 불만이다. 트럼프가 비판받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해체’에는 동전의 다른 면이 있다. 미국이 그동안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유지의 명분으로 삼아온 전통적 적성국가에 대한 대결과 압박의 지양이다. 러시아와는 화해와 협조를 통한 국제분쟁 해결, 북한과는 역사적인 정상회담, 중국에는 지정학적 대결을 지양하는 대신에 무역 등 경제문제로만 압박 등이다. 이를 두고 ‘고위 관리’의 기고는 “트럼프는 푸틴이나 김정은 같은 전제자와 독재자에게 선호를 보이고, 우리와 같은 동맹을 묶어주는 관계에는 거의 진정한 평가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는 ‘동맹 유지에 대한 부담을 지기보다는 적과의 화해’라는 트럼프주의의 논리적 귀결이기도 하다. 최근 <포린 어페어스>에 실린 랜들 슈웰러 오하이오주립대 교수의 ‘트럼프 대외정책의 세가지 환호’는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저하되고 경쟁국이 부상하는 미국 일극주의 쇠퇴에 대응하는 전략을 제시하는 ‘트럼프판 현실주의’라고 옹호했다. 현재 우리는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이상주의로 트럼프주의를 평가할 한가한 처지가 아니다. 철저한 현실주의로 트럼프주의에 대응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북-미 접근을 추동한 트럼프주의의 정치적 생사가 오는 11월 중간선거로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선거에서 패배해도, 또는 승리해도 한반도에는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Egil@hani.co.kr
연재정의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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