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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그런데 삼성바이오는?

등록 2018-10-10 18:45수정 2018-10-11 09:27

김회승
경제에디터

이달 초 정부가 내놓은 ‘신산업 일자리 창출방안’ 보도자료를 보면서 마치 오래된 신문을 들춰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발표 내용은, 전기·수소차와 사물인터넷, 바이오·헬스 등 5대 미래 신산업 분야에 125조원 규모의 민간 프로젝트를 추진해 2022년까지 일자리 10만7천개를 만들겠다는 게 요지다. 개별 사업마다 실제 투자 규모와 정부 지원책, 일자리 효과가 구체적인 수치로 깨알처럼 나열돼 있다.

나만 그런 걸까? 자료 곳곳에서 ‘육성’ ‘진흥’ ‘활성화’ 등 고색창연한 용어를 맞닥뜨리니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또 구리기도 했다. 자료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이미 발표한 것들을 그대로 ‘복붙’한 것들도 여기저기 숨어 있었다. 짐작하건대, 경제 부처들을 채근해 캐비닛에 넣어놓은 정책 사업들까지 박박 긁어모아 내놓았을 게다. 정책 목표와 예산, 지원책 등을 디테일하게 따져보는 건 응당 정부가 할 일이다. 실망스러운 건, 일자리 몇만개, 투자액 몇백억원 따위의 양적 목표와 성과에 매달리는 구태의연함이다. 검증할 수 없고, 책임질 수도 없는 정책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건 정책이 아니라 프로파간다에 더 가깝다.

정책 방식은 또 어떤가. 미래 신산업이라는데, 등장인물은 옛 드라마 주인공 그대로다. 현대차는 수소차, 삼성은 바이오, 에스케이는 에너지 신산업…. 정부 계획대로라면 미래 신산업 역시 재벌 대기업들이 맨 앞에서 이끄는 선단식 구조로 가는 모양새다.

요즘 문재인 정부의 정책 담당자들을 만나면, 최근 우리나라 주력 제조업의 부진은 수십년간 성장 잠재력을 갉아온 선단식 구조, 수직계열화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규모 완성업체들은 그런대로 버티고 있지만, 이들의 경쟁력을 떠받쳐온 뿌리와 주변부는 큰 위기라며 심각해한다. 경제가 정말 어렵다면 정부가 가장 먼저 눈을 돌려야 할 곳은 바로 이곳이다. 우리 경제의 뿌리와 주변부를 갉아먹고 있는 낡은 구조와 어려움에 처한 그 피해자들이다.

낙수효과를 분수효과로 바꿔보겠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패러다임 전환 아닌가. ‘경제는 곧 기업’이라는 우상을 깨고 ‘경제는 곧 우리의 삶’이라는 게 소득주도성장 포용성장의 근간 철학이 아닌가. 관료와 재벌들이 강변해온 낡은 방식으로 패러다임 전환과 미래 신산업의 문을 과연 열 수 있을까.

최근 약속이나 한 듯, 미래 신산업의 주인공이 될 재벌 총수들이 짧은 옥살이를 하고 경영에 속속 복귀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화끈하게 뇌물죄를 지우고 풀려났다. 대통령을 삼성 공장에 초청하고 북한에도 함께 갔다. 이 부회장 말처럼 이제는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노력”할 일만 남았다. 청와대는 “일은 일이고 재판은 재판”이라는 신경질적 반응인데, 실제 그럴 거라고 믿는 이들은 별로 없다.

이재용 부회장은 뇌물 수사, 노조와해 수사 등 이미 큰 산을 몇개 넘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이 하나 남았는데,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금융당국이 초유의 재감리 결정으로 퉁쳤고, 검찰로 넘어간 지 석달여가 됐지만 감감무소식이다. 혹시 ‘#그런데 삼성바이오는?’이란 청와대 청원이 쇄도한다면 모를까. 단언컨대, 문재인 정부 검찰이 재벌을 크게 건드리는 일은 더는 없을 거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진보는 진단은 잘하는데, 솔루션이 없다”고 했다. 기업이 어려우면 십시일반 힘을 합쳐 살릴 수 있지만, 우리네 삶이 나락에 빠지면 답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더 솔직하고 과감하고 유능해져야 한다.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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