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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김수영이 남긴 50년의 숙제 / 이명원

등록 2018-10-19 17:41수정 2018-10-20 12:24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올해는 시인 김수영의 사후 50주기가 되는 해이다. 나는 그가 작고한 직후 태어났고, 그보다 조금 많은 나이가 되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지만, 그가 남긴 숙제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미해결의 장이다.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니, 나는 김수영이 2018년의 우리에게 50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어떤 숙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첫째, ‘언론자유’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김수영이 언론자유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1960년 10월6일에 쓴 ‘잠꼬대’라는 시 때문이었다. 이 시에 대해 그는 “이 작품은 단순히 ‘언론자유’에 대한 고발장인데, 세상의 오해 여부는 고사하고, <현대문학>지에서 받아줄는지 의문이다”라고 일기에 적는다. 10월18일에는 <자유문학>에서 원고를 달라고 하지만, 본문의 ‘○○○ ○○’를 다른 표현으로 바꾸자고 한 사실을 적은 후, “한국의 언론자유? God damn이다!”라고 적고 있다. 10월29일의 일기에는 “‘잠꼬대’는 발표할 길이 없다. 지금 같아서는 시집에 넣을 가망도 없다”고 적는다.

이 시는 2008년에 공개된 ‘김일성 만세’이다.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김수영은 ‘언론자유’라고 말한다. 남한의 출판물에 ‘김일성 만세’라는 다분히 의도된 풍자적 시어조차 쓸 수 없다면, 언론자유? 그런 것은 없다는 게 김수영의 판단이었다.

둘째, 분단을 지속시키는 냉전구조의 극복 문제이다. “선잠이 들어서/ 그가 모르는 동안에 조용히 가다오 나가다오/ 서푼어치 값도 안 되는 미·소인은/ 초콜렛, 커피, 페치코오트, 군복, 수류탄/ 따발총……을 가지고/ 적막이 오듯이/ 적막이 오듯이/ 소리없이 가다오 나가다오/ 다녀오는 사람처럼 아주 가다오!”

1960년 8월4일에 쓴 ‘가다오 나가다오’는 김수영이 거의 유일하게 신뢰한 후배 시인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껍데기는 가라’)와 조응한다. 이것은 미국, 소련과 같은 냉전의 당사자들은 물론 모든 폭력적 장치의 종식을 김수영이 갈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시민혁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육법전서와 혁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1960년 5월25일에 쓴 시다. 이 시기에 이미 김수영은 4·19 혁명의 변질, 실패를 예감했다. 이해 4월26일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후 하와이로 망명했지만, 구조적 현실은 변한 게 없다고 김수영은 생각했다.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보라 항간에 금값이 오르고 있는 것을/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보라 금값이 갑자기 팔천구백환이다/ 달걀값은 여전히 영하(零下) 이십팔환인데”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다고 낡은 정치구조가 청산된 것은 아니었다.

김수영이 우리에게 50년 동안 해법을 요구했던 숙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첫째, 언론자유는 현재 가짜뉴스와 포르노그래피의 준동으로 귀결되고 있다. 둘째, 냉전구조는 미-소 대결에서 미-중 신냉전으로 변용되었을 뿐이다. 셋째, 연인원 1500만명이 참가한 촛불항쟁에도 불구하고, 김수영이 “그놈들”이라고 멸칭했던 적폐구조는 건재하다.

50년의 숙제를 명쾌하게 풀 수 있을까. 가능 혹은 불가능의 경계에 우리는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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