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콘텐츠부문장 지난 18일 낮 광화문역에서 일단의 무리가 웅성거리며 몰려나가는 걸 목격했다. 대부분 60대가 넘어 보이는 남성들로 구성돼 있는 점이 특이해 따라가봤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광화문광장. 그곳엔 족히 몇만명은 돼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50~60대 남성들이었다. ‘카카오 티(T) 카풀’ 출시에 항의하려고 택시 노사가 연 ‘택시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 현장이었다. ‘택시 살려내라’는 머리띠를 질끈 맨 이들이 들고 있는 펼침막이 눈에 들어왔다. ‘택시업계 무시하는 카카오를 박살내자.’ 문득 초기 산업혁명의 물결이 몰아쳤던 19세기 초 영국의 전통 공업지대가 이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 영국에선 자동 방직기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직물 노동자들이 네드 러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공장과 기계 파괴에 나섰다. 훗날 러다이트 운동으로 일컬어진 이 저항운동은 산업혁명의 사회적 파장과 노동자들의 대응을 보여주는 초기 사례였다. 200년 전 영국 노동자들처럼 우리의 택시 노동자들도 생존권을 잃을 위기를 직감하고 거리에 나선 것 아닐까. 경제학계에선 최근 인공지능, 자율차, 사물인터넷, 로봇, 공유경제 등의 현상을 보면서 새로운 산업혁명이 시작된 게 아니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 같은 이는 1차(기계화), 2차(대량생산), 3차(디지털) 산업혁명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저명한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같은 이는 기술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속도와 범위, 영향력 면에서 과거와 단절적 성격을 띨 정도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느 쪽 주장이 맞든 60대 택시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선 걸 보면 산업 현장에선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변화는 비단 운송업계에 그치지 않는다. 여행, 유통, 미디어 등 서비스업은 물론이고 전통 제조업도 자유롭지 않다. 기술 발전의 도도한 흐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를 놓치거나 거스를 경우 세계사의 흐름에서 도태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에 어떻게 응전을 해야 할까. 우선은 기존의 법과 제도를 새로운 경제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 가장 중요한 잣대는 소비자 편익 증진이다. 경제의 궁극적 목표가 소비자 후생 증진이라는 것은 당연한 말 같지만 이를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탓이다. 택시 카풀의 경우에도, 현재의 택시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광범위한 불만을 고려할 때 개혁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른바 플랫폼 기업들의 카풀 영업을 허용해 소비자들의 늘어나는 수요를 수용하되, 기존 택시업계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신업태 진입으로 밀려날 노동자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다. 30만명가량이 종사하는 택시업계의 경우 대부분 노동자가 어르신들이다. 이 중 일부는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택시 감차 지원, 직업 재훈련 등과 함께 사회안전망 강화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정부는 최근 미래차·사물인터넷가전 등 5대 산업을 포함한 ‘신산업 일자리 창출 방안’을 내놨다. 정부가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 제고 여건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에 방점이 찍히다 보니 구조조정으로 밀려날 노동자들의 구제 방안에는 소홀히 하는 것 같다. 아무리 혁신이 좋다 해도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는 나아가기 어렵다. 혁신경제와 복지를 아우르는 대담한 설계도를 내놔야, 혁신경제가 ‘창조경제’의 재판이라는 의구심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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