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남남 갈등 유발하는 ‘분노’ 발언 / 이용인

등록 2018-10-31 19:26수정 2018-10-31 20:47

이용인
한반도국제 에디터

‘남남 갈등 부추기기’는 북한의 의도와 전략을 논할 때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북한이 유화적인 대남 메시지를 던질 때마다 모든 분석은 남남 갈등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싱거운 결말로 이어진다.

북한의 의도를 분석할 때 그다지 유의미한 인식의 확장을 던져주지 못한 ‘남남 갈등’은 최근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발언을 분석할 땐 의외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최근 미 국무부 초청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우리나라 외교부 기자단에게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상당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매우 우려하거나 심지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1993년부터 94년까지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을 지냈고, 이후에도 5년여 동안 중앙정보국에서 한국과 부과장으로 근무했다. 지금도 한국에서 포럼이나 세미나가 열릴 때마다 단골 참석자로 초청받는다. 이런 그가 자신의 발언이 한국 사회에 끼칠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부 한국 언론들은 그의 말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결국 그의 말은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견으로 한-미 관계가 삐걱거리고, 그 이유는 미국보다는 문재인 정부 탓이라는, 한국 사회의 ‘남남 갈등’을 유발하는 모양새가 됐다.

그의 말이 활자화된 것을 보고 ‘분노’까지는 아니지만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 한-미 간에 대북 정책의 ‘속도’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는 것은 뉴스거리도 아니다. 한-미 간 이견이 있을 때 정책 결정의 책임성이 덜한 전문가들이 양국 분위기를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런 솔직한 토론은 우선적으로 ‘트랙2’라고 일컫는 양국 전문가 회의에서 비공개로 진행하는 게 관례로 굳어져 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톱다운’ 정책 결정 과정에 비춰볼 때 그가 만난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얼마나 정책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러니 클링너 선임연구원이 한국 기자들 앞에서 굳이 ‘분노’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쓴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속도나 주도권 문제는 한반도 정세가 교착 조짐을 보일 때마다, 그리고 한-미 간 대북 정책 접근법이 다를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과는 정반대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09년 여름,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북하려 할 때 이명박 정부가 ‘속도 조절’을 요청해,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이 몇개월 늦춰졌다. 박근혜 정부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직접 협상을 가로막으려 애썼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층이 얇긴 하지만 한국 언론들도 미국 전문가들의 발언을 소개할 때는 몇가지 판별 기준을 세워야 한다. 뻔한 얘기만 하는 전문가와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 전문가, 한국에 애정이 있는 전문가와 인종주의나 패권주의적 태도를 지닌 전문가 등을 잘 감별해야 한다. 이제 미국 전문가들한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다.

교착 국면이 반복될 때마다 ‘미국발 한국 정부 때리기’는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9·19 평양선언’의 대통령 비준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을 보며 미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떤 부처도 비준 필요성과 법률적 논리에 대한 설명자료조차 내지 않았다. 컨트롤타워가 있는지, 있다면 제대로 작동하는지, 참모들이 문 대통령의 입과 지지율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품는 사람이 늘고 있다.

yy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최상목 대행, 내란 특검법 거부 말고 공포하라 1.

[사설] 최상목 대행, 내란 특검법 거부 말고 공포하라

[사설] 국힘의 막무가내식 헌재 공격…‘탄핵심판 불복’ 노리나 2.

[사설] 국힘의 막무가내식 헌재 공격…‘탄핵심판 불복’ 노리나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3.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이재명 대 반이재명’ 전에 ‘헌법 대 반헌법’ 4.

‘이재명 대 반이재명’ 전에 ‘헌법 대 반헌법’

[사설] 반도체보조금 약속 뒤집으려는 미국, ‘불량 국가’인가 5.

[사설] 반도체보조금 약속 뒤집으려는 미국, ‘불량 국가’인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