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시리아 철군 결정은 옳으나, 그가 이를 매끄럽게 완수할지는 별개 문제다. 시리아 철군의 도정은 한반도 평화와 분쟁의 도정으로 연결될 것이다.
선임기자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를 명령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향후 미국 대외정책을 기로에 세웠다. 의회에서 최대 우군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국방 매파들이 비판의 선봉에 섰다. 반대론자들은 철군이 시리아를 러시아와 이란의 영향권으로 넘기고, 이슬람국가(IS)가 다시 회생하고, 이슬람국가 패퇴에 역할을 한 시리아 쿠르드족을 터키에 희생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시리아 북부에 있는 최대 2200여명의 미군은 이슬람국가에 대한 지상 격퇴작전의 주 병력인 쿠르드족 민병대 주축의 시리아민주군(SDF)을 양성·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2015년 11월 이슬람국가가 파리 도심에서 연쇄테러를 벌이며 테러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자, 미국 안팎에서는 지상군 파견 요구가 터져나왔다. 당시에도 이 2천여명의 미군 병력은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도, 워싱턴의 국방 매파들은 이들을 없는 듯이 평가했다. 특수군 중심의 이 병력은 기본적으로 기동군 성격으로, 고정적인 주둔지가 있는 재래식 지상군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당시 행정부는 지상군 파견은 반미 감정만 부추겨 미국을 시리아 수렁에 빠지게 한다며 현지 대응병력 양성이라는 노선을 지켰다. 그 결과 이슬람국가 격퇴 작전에서 그들의 영역을 99%나 탈환하는 성공을 현재 거뒀다. 이번 철군 명령은 사실 군사전술적 측면에서 별 의미가 없는 상징적인 조처다. 이들은 지금이나 앞으로도 국경을 넘나드는 특수기동군이고, 미군은 중동에서 여전히 4만여명의 병력을 운용한다.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은 터키군 사령관과 한 회담에서 미군이 대이슬람국가 동맹을 지원하는 공습을 계속하는 한편 시리아 내 미군이 모든 것을 챙겨서 떠나기보다는 수시로 진입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시리아는 미국의 영향권에 있었던 적이 없다. 냉전 시절엔 소련의 동맹국이었고, 냉전 뒤에도 바샤르 아사드 정권은 반미였다. 철군이 ‘미국의 시리아 상실’이라는 주장은 시리아를 미국 영향권으로 만들겠다는 의도와 상통한다. 이라크 전쟁을 재현하자는 짓이다. 미국의 이라크전쟁은 이슬람주의 방파제와 이란 봉쇄 역할을 하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대책없이 붕괴시키며 거대한 세력 공백을 자아내 이슬람국가의 부상을 야기했다.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미국의 의도 역시 러시아의 귀환과 이슬람국가의 부상을 더 재촉했을 뿐이다. 시리아를 미국 영향권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 대가는 이라크전쟁 이상이 될 것이다. 오히려 미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시리아에서 유리한 입지이고, 시리아 내전 평화협상은 미국의 도장이 필요하다. 군사작전 능력을 해치지 않는 상징적 철군은 미국의 지분을 보장하는 평화협상을 열 수 있다. 철군이 이슬람국가 격퇴에 많은 목숨을 희생한 시리아 쿠르드족을 터키의 처분에 맡기는 토사구팽일 수 있다. 이미 미국은 1991년 걸프전 때 이라크 쿠르드족을 선동해 봉기시켰다가, 후세인으로부터 대량학살당하는 것을 모른 척했다. 미국은 지금 터키로부터 자신과 쿠르드족 가운데 양자택일하라고 압박받는다. 철군에 반대하는 국방 매파들에게도 그 선택은 터키일 수밖에 없다. 영원한 적과 동지가 없다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다. 미군 주둔이 쿠르드족의 비원인 분리독립을 줄 수도 없다. 주변 관련국들의 타협에 따라 이라크 쿠르드족 같은 자치 확대가 현재로선 최선이다. 이슬람국가 격퇴를 통해 시리아 쿠르드족도 그 지분을 얻은 상태다. 트럼프는 아프간 주둔 미군 감축까지 표명했다. 냉전 이후 세계적인 분쟁과 현안에 미국식 자유주의 질서를 관철하려고 개입해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전략을 수정하겠다는 의지다.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 등 보수진영의 리버테리언(자유방임주의자)이나, 로 카나 민주당 하원의원 등 진보진영의 비개입주의자들은 트럼프를 혐오하지만, 그의 철군에는 찬성한다. 그들이 ‘자유주의 헤게모니’ 전략이라고 비판하는 기존 대외정책을 트럼프가 수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트럼프표 대외정책은 한반도엔 위기이자 기회다. 거세지는 방위비 부담 압박이 위기이고, 트럼프가 다시 의지를 불태우는 북-미 정상회담이 기회다. 트럼프의 철군 결정은 옳으나, 그가 이를 매끄럽게 완수할지는 별개 문제다. 시리아 철군의 도정은 한반도 평화와 분쟁의 도정으로 연결될 것이다. Egil@hani.co.kr
연재정의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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