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본격 진입하면서 고용 문제가 심각하다. 이번 정부 출범 초부터 일자리 창출은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였다.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 특히 청년층의 지지를 받아 출범한 정부이니만큼 청년 일자리 창출은 국정의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부 출범 초부터 실업 증가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주역은 중소기업이다. 그런데 우리 경제를 지지해온 전자와 자동차산업 협력업체의 일자리가 2015년부터 감소해왔다. 전차산업(전자·자동차)은 대표적인 글로벌 산업으로 근래 국내 투자보다는 국외 직접투자가 증가했다. 세계 소비자들에게 근접해서 연구개발과 생산활동을 벌여 적기에 우수 제품을 공급하고, 저비용 국가에 생산기지를 구축해 우리 제품의 가성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국내 대기업들과 전속거래로 묶여 있는 국내 협력업체들도 국내 투자보다는 해외 동반진출에 자금을 지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
전차산업의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원가 절감과 함께 혁신이 생존의 열쇠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전차산업의 근로자 1만명당 로봇 보급률, 즉 자동화 수준은 다른 산업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결과 전차산업의 일자리 창출은 어려운 상황이고, 국내 중소 협력업체들은 수익성이 떨어지자 고정비용 절감을 위해 감원을 실시하고 있다. 얼마 전 만났던 중견 자동차부품업체 사장님의 말씀이 귓전에 선하다. 원가 절감을 위해 41명이 작업하던 생산공정을 자동화하니 1명이면 충분하더라는 것이다. 여기에 고령화까지 더해져 일자리 창출은 그만큼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지난해 이용섭 광주광역시장과 현대차노조 간부들과의 면담. <연합뉴스>
이러한 상황에서 재부상한 광주형 일자리는 논쟁거리일 수밖에 없다. 필자도 선진국 자동차산업을 벤치마킹해 고안된 광주형 일자리의 기본 개념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그러나 현재의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제안 당시와는 사뭇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애초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에 적용하려 했으나 노조의 지지를 받지 못하자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자동차산업의 부진으로 공급 과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신규 공장을 설립한다는 지역 자동차산업의 양적 성장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애초부터 새로운 일자리 모델에 하필 특정 지역명을 쓴 점도 지역 이기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해왔다. 독일이나 미국의 일자리 모델에 특정 지명이 사용되지는 않았으며, 지역별로 일자리 모델을 적용하지도 않았다. 독일과 미국의 새로운 일자리 모델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사 간 충분한 소통과 합의를 거쳐 개발된 점과 비교하면 보완이 불가피하다. 또한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고용위기 지역의 유사한 일자리 모델 도입도 업종별로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국내 자동차산업이 외환위기보다도 심각한 국면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자동차산업에서 1만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의 감원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가 위기의 시발점인지 저점인지에 대한 논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자동차산업의 미래가 불확실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선진국 학계는 경영 환경이 불투명해지자 냉전 종식 이후 대두되었던 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VUCA)에 대한 연구를 새롭게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 서 있는 노동계도 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의 진앙을 놓고 아직도 노사 간에 심각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필자는 이번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아래, 즉 중소 협력업체의 구조조정에 그칠 수도 있다고 본다. 국내 완성차업체가 글로벌 경영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번 위기가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으로 그치더라도 산업공동화 문제를 유발해 일자리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자동차산업의 경영 성과 악화와 대립적 노사관계는 국내 완성차업체의 경영전략 실패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세계 2500대 연구개발 투자 기업에 등재된 국내 자동차업체 수는 전년보다 4개 감소한 8개에 그쳤다. 혁신이 위기 돌파의 수단이고 새로운 투자를 촉진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으나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혁신 역량마저 하락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 내부에서 각자도생이 강조되는 현실에서 협력업체들이 연구개발 투자마저 축소하고 있어서 우리 자동차산업의 지속가능 성장 기반이 약화될까 우려스럽다.
내수시장이 상대적으로 작은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전차산업 대기업들이 보호무역주의의 파고를 넘어 계속기업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세계화가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혁신 역량과 핵심 역량을 강화해 국산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확고한 경쟁위를 확보할 경우 보호무역장벽에 상관없이 수출 증대와 국내 투자 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조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선진국 자동차 노조는 고통을 분담하면서 자국 내 산업기반을 지키기 위해 임금을 동결하거나 일시적으로 삭감해 위기를 극복했다. 국내 생산기반이 확고해야 노조도 존재할 수 있으며, 일자리는 현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와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광주형 일자리를 떠나 국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민 대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슈논쟁] 광주형 일자리
<편집자주> ‘광주형 일자리’는 고임금 산업으로 여겨지는 완성차 공장을 새로 짓되, 임금을 적정 수준으로 낮춰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고안된 사업이다. 광주광역시가 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해 추진해왔으나 노사 간 뿌리 깊은 불신 등으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연말 협상 결렬 뒤 광주시가 협상 재개를 모색하는 중이다.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해 좀 더 깊이있는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하며, 두 전문가(박명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서로 다른 시각을 나란히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