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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우리는 날마다 죽음에 빚지고 산다 / 석진환

등록 2019-02-17 18:09수정 2019-02-18 09:34

석진환
정치사회 부에디터

새해 첫날, 대학 동기한테서 짧은 카톡이 왔다. “어제 돌아가신 강북삼성병원 의사선생님, 그분이 세희 오빠야….” 대학 한해 후배인 세희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떠올렸다.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어려서부터 의지해왔던 오빠였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후배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땐 정말이지, 탄식과 걱정이 혼란스럽게 뒤엉켰다.

다행히 후배는 ‘깊은 슬픔’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뎌낸 듯했다. 한편으로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한 모습을 보여줬다. 빈소를 차리지도 못했던 첫날 밤은 울며 지새웠다고 했다. 이튿날 후배는 ‘오빠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언제나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했던 오빠라면 어떻게 하길 원할까’ 고민했다고 한다. 다음날 후배는 ‘낯설고 두렵다’던 기자들 앞에 섰다. “고인은 평생 모든 사람이 사회적 낙인 없이 정신치료와 지원을 받길 원했다.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우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유족들은 장례 뒤 감사 편지와 함께 조의금을 ‘안전한 진료환경’과 ‘편견 없는 치료’를 위해 기부했다. 유족들은 편지를 통해 고인에게도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에도 주위를 살펴줘서 고맙다. 우리 함께 살아보자는 뜻을 잊지 않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오늘(17일), 유족들은 고 임세원 교수의 49재를 지냈다. 전날 후배는 “누군가에게 일어나야 할 일이 하필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다면, 하늘의 뜻이 거기 있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런 생각도 든다”고 했다.

시커멓게 타버렸을 유족의 속내를 가늠할 순 없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론 ‘소중한 사람은 저렇게 보내는 거구나’ 싶었다. 그가 왜 이렇게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살피는 것, 그가 원했던 걸 떠올리고,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떠난 이를 오래 기억해주는 것. 어쩌면 그게 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전부이겠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겪었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그런 노력을 하는 이들이 언제나 주변에 있었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가 아들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62일을 거리에서 보냈던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윤한덕 센터장이 떠난 뒤 이국종 교수가 바쁜 몸을 쪼개가며 ‘여전히’ 열악한 응급의료체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복동 할머니를 대신해 스스로 나비가 되어 일본대사관 앞에 모인 청년들도 그렇다. 떠난 사람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 그래서 살아남은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그들이 나서서 했다.

신문 지면 또는 휴대폰 화면엔 우리가 지키지 못한 죽음이 매일 오른다. 이들을 지키지 못해 생기는 우리 사회의 부채도 날마다 쌓여간다. 어떨 땐 신문 지면이 떠난 이들에게 갚아야 할 두툼한 ‘빚 문서’처럼 보이는 날도 있다.

매일 받아드는 빚 문서가 유쾌할 리 없다. 신문이 너무 우울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을 대신해서 말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죽음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빚지고 산다는 걸 적어두는 것이다. 어떤 죽음은 사회 전체에 아프게 간직되는 ‘집단기억’으로 남아,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다만 이런 부채를 깡그리 부정하는 ‘악성채무자’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참으로 고약하고도 곤욕스러운 일이다. “지금도 똑같이 진압하겠다”(김석기 의원)며 10주기를 맞은 용산참사 고인들을 ‘두 번 죽인’ 이가 그런 사례가 되겠다.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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