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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워싱턴의 외교 작동방식과 한반도 / 박현

등록 2019-03-10 17:50수정 2019-03-10 22:00

박현
신문콘텐츠부문장

외교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서 이뤄진다고 일컬어지지만, 이런 두루뭉술한 잣대만으로 현실 외교의 작동방식을 제대로 읽어내기는 어렵다. 특히 ‘제국’을 다스리는 것과 같은 행태를 보이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들여다볼 때 더욱 그렇다. 특파원 시절 3년간 워싱턴 정가를 지켜본 바로는 미국 국내 정치가 대외정책도 좌우한다는 게 나의 잠정 결론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의 명운이 달린 정책도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에 유리하면 취하고, 불리하는 버린다는 얘기다. 그래서 백악관은 대외정책에 대해서도 미국 내 여론 동향에 매우 민감하다.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 대신에 국제주의를 표방하고 나선 오바마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라크전 반대론자였던 오바마는 선거 공약대로 2011년 이라크에서 철군했다. 그랬던 오바마도 2014년 이슬람국가(ISIS) 격퇴전을 선포했는데, 이 결정엔 미국 내 여론 동향이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이라크 내 소수파 기독교인 수만명이 이슬람국가의 만행을 피해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장면이 티브이에 방영되면서 ‘유약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퍼져나가자 견디지 못한 것이다.

여론 민감도를 따지자면 트럼프 대통령은 더할 것이다. <폭스뉴스>를 끼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여론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는 트위트로 실시간 반응하면서 전통 매체들의 사실 보도까지도 가짜뉴스로 낙인찍으며 여론을 자기편으로 돌려세우려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된 이유를 두고 온갖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 나는 뮬러 특검이라는 초대형 정치 이슈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쪽이다. 정상회담 전에 나온 뉴스들로 보면, 트럼프는 북한과의 일괄타결(빅딜) 방식이 아니라 단계적 접근법(스몰딜)에 기울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협상장에서는 트럼프가 빅딜을 밀어붙이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협상전략의 변경 이유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트럼프의 트위트를 통해 당시 그의 심리상태를 엿볼 수는 있다. 회담이 열렸던 지난달 27~28일 그의 트위트는 북핵 협상과 함께 그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의 의회 청문회 두가지가 주제였다. 자신의 정치생명이 달린 코언 청문회에 관심이 쏠려 있었음을 말해준다. <시엔엔>과 <폭스뉴스> 등도 트럼프와 김정은 위원장의 첫날 회담과 만찬을 주요 뉴스로 다루다가 코언 청문회가 시작되자 청문회 생중계에 매달렸다. 트럼프도 4일 트위트에서 “북한과 매우 중요한 핵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민주당이 코언 청문회를 열었는데, 이것이 내가 협상장에서 걸어 나오는 데 원인이 됐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제재 완화를 하는 이른바 스몰딜을 ‘배드 딜’로 보는 워싱턴 정가의 견해를 의식하면서, 스몰딜 합의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더 약화시킬 것으로 우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북-미 협상은 이제 물건너간 것일까? 트럼프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그가 지금까지 북핵 문제를 언급할 때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지난 20여년간 전임 대통령들은 실패했으나, 뛰어난 협상가인 자신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내년 11월 대선을 치러야 하는 트럼프는 대외정책에서도 업적을 내세워야 하는데 제1순위 후보가 북핵이다.

북-미 협상가들과 우리 정부가 창의적인 해법을 내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지만, 워싱턴 외교의 작동방식을 고려하면 한반도 정책에 대한 미국 내 매파적 시각을 완화하거나 우호적으로 바꾸는 작업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미 의회와 싱크탱크, 언론 등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한 설득 작업에 적극 나서야 할 이유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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