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사회 같은 건 있다.”
너무나 당연해 오히려 이상하게 들리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역사적 의미가 클 수도 있는 말이다. 한 세대 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함께 신보수주의 시대를 연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사회 같은 건 없다”라고 했다. 사회가 없으니 복지·교육·노동 등의 사회정책도 의미가 없다. 이 발언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두 발언 모두 영국 보수당 당수의 입에서 나왔으니 흥미롭다. 보수주의가 크게 방향을 트는 걸까. 주인공은 최근 몇달 사이 신데렐라처럼 떠오른 데이비드 캐머런이다. 그는 당을 왼쪽으로 끌고가 ‘온정적 중도보수’ 이미지로 바꾸려 한다.
유럽에는 지금 중도정치가 꽃피고 있다. 공식은 이렇다. 신보수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먼저 좌파 정당이 중도화한다. 영국 노동당이 그랬고, 독일 사민당과 스페인 사회노동당도 그렇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과실을 따먹었다. 그러자 이제는 우파 정당이 같은 전략으로 이들에 맞선다. 독일 기민당은 최근 집권에 성공했고, 영국 보수당이 다음을 노린다.
이들의 모델은 미국이다. 빌 클린턴이 중도화한 민주당으로 신보수주의를 물리치고 8년을 집권한 뒤, 조지 부시 역시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걸고 정권을 탈환한 바 있다. 하지만 양쪽의 ‘정치동조 현상’은 여기서 그친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중도가 아니라 극우 성향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정치동조를 하는 곳은 오히려 일본과 한국이다. 부시 가족의 일원으로까지 대접받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군국주의적 정책을 안하무인으로 밀어붙인다. 2차대전 전범들과 같은 역사관을 가진 그에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역사왜곡 교과서가 문제될 리가 없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까지 자위대의 적극적 해외진출을 주장하고 중국과 한국을 공격한다. 일본 정치권 전체의 극우화다.
우리나라에선 때아닌 색깔론이 한창이다. 강정구 교수 사건에 이은 아펙 비판 동영상 파문, 최근 쏟아져나오는 북한 정권 붕괴론 등은 미·일 극우세력의 팽창과 흐름을 같이한다. 세간의 농담처럼 기껏해야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참여정부는 좌경정권으로 규정된 지 오래다. 어렵게 방향을 잡은 6자회담도 자칫 한-미-일 극우동맹의 포로가 될 참이다.
이들의 가장 큰 무기는 국민의 불안감이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내 악마화한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과 아돌프 히틀러의 제3제국도 그랬다. 유럽 극우파에게는 외국인, 부시 정권에게는 이슬람 과격파와 ‘악의 축’ 정권, 일본 극우파에게는 중국과 북한이 그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극우세력에게는 남북한 정권과 노조, 시민단체 모두가 적이다. 사학법 개정안 통과 이후 이들의 ‘전교조 히스테리’를 보면 자신이 창조한 마녀의 그림자에 놀라 경기를 일으키는 듯하다.
왜 중도정치이고 극우동맹일까. 양당 정치가 잘 뿌리내린 곳에서는 극우·극좌 세력이 자리잡기가 어렵다. 게다가 유럽 나라들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통해 극우정치의 위험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반면 미국은 양당제가 잘 정착돼 있긴 하나 극우세력을 청산해본 역사가 없다. 그래서 미국 공화당은 중도와 극우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보수정당도 다르지 않다. 한-미-일 극우동맹의 형성은 결국 한나라당이 극우로 치우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왜 중도정치이고 극우동맹일까. 양당 정치가 잘 뿌리내린 곳에서는 극우·극좌 세력이 자리잡기가 어렵다. 게다가 유럽 나라들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통해 극우정치의 위험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반면 미국은 양당제가 잘 정착돼 있긴 하나 극우세력을 청산해본 역사가 없다. 그래서 미국 공화당은 중도와 극우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보수정당도 다르지 않다. 한-미-일 극우동맹의 형성은 결국 한나라당이 극우로 치우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