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아홉 모, 고추 한 모, 부추와 돌나물까지 대문 앞 고무함지박에 마련한 소박하고 작은 텃밭. “이 정도면 우리 두 식구 충분히 먹고도 남아요~.” 어버이날 복지관에서 달아주었다는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상추에 물을 주려던 어르신이 묻지도 않은 말을 건네신다. 연세는 어찌 되세요, 바깥어르신은 어디 계세요 하고 여쭸더니 “나이는 몰라요. 나이 먹는 게 자꾸만 부끄러워서 잊어버렸어. 징그러운 양반은 뭐 하러 물어요. 노인정에나 갔겄지~.” 골목에 드는 햇살 한 줌이 상추를 비추고도 남아 어르신 얼굴을 환히 밝힌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