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담론은 당연히 북한에서도 나타난다. 양상이 다를 뿐이다. 대중 시위나 매체를 통한 논쟁 등 시민 차원의 문제 제기는 약하지만, 정치세력 안에서는 치열한 생각의 충돌이 일어난다. 그 결과 사고의 흐름이 요동치고 정책 기조와 경제·사회의 큰 변화가 생긴다. 북한판 시대의 담론기 역시 20년 안팎의 주기를 갖는다. 폐쇄사회로 분류되는 북한 역시 세계사의 물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의 가장 큰 특징은 체제의 규정력이 강하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사회주의를 고수해왔지만, 최고 권력자와 지배세력의 변화에 따라 네가지 체제로 나눌 수 있다. 담론은 체제 교체 전후에 집중되며, 체제 초기에는 예외 없이 대규모 숙청이 벌어진다.
첫번째는 1945년부터 74년까지 이어진 ‘김일성 체제’다. 소련의 지지를 등에 업은 김일성은 해방 3년기에 토지재분배 등 개혁과 담론을 주도하면서 집권에 성공했다. 그가 일으킨 한국전쟁은 한반도 현대사를 굴절시킨 최악의 사건이다. 전쟁 이후 여러 담론 또한 그가 주도한다. 수령 유일지도체제로 이어지는 북한식 독재 체제론, 자립적 민족경제론, 그 뒤 주체사상으로 통합되는 주체·자주 노선 확립 등이 그것이다.
다음은 아들인 김정일이 ‘당중앙’으로 불리며 후계자로 자리 잡은 1974년부터 김일성이 숨진 94년까지의 ‘김일성-김정일 체제’다. 두 사람이 사실상 공동 통치한 이 시기에 김정일은 수령 체제를 공고하게 하고 3대혁명소조운동 등을 통해 당의 지배력을 강화한다.
94년부터 2011년 말까지 이어진 ‘김정일 체제’는 군을 앞세운 선군체제다. 이 체제는 최악의 식량난으로 수십만~수백만명이 숨진 ‘고난의 행군’으로 시작한다. 그 뒤 김정일은 제한된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 재건을 꾀하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2011년 12월 숨을 거둔다.
2012년 시작된 ‘김정은 체제’는 경제 발전과 핵 개발을 모든 정책의 한가운데 놓은 병진체제다. 국방력 강화와 경제 건설을 함께 추구한 1950년대 정책 기조와 비슷하지만 김정은 체제는 초점이 경제 쪽에 있다.
권력 세습과 긴밀히 연결된 북한의 체제는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응한 것이기도 하다.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의 동서 데탕트,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의 냉전 종식과 소련·동유럽권의 몰락, 중국의 부상과 한국의 선진국 진입 등이 각각 김일성-김정일 체제, 김정일 체제, 김정은 체제가 구축되는 배경을 이룬다.
북한의 체제는 위에서 시작해 하향식으로 만들어진 점에서 왕조와 비슷하다. 내용이 부실해지면 체제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도 닮았다. 북한 체제의 비극은 그 내용마저도 체제 유지·강화라는 큰 기준에 따라 취사선택돼 개혁이 쉽지 않은 데 있다.
■ 오랫동안 지속한 북한의 대외 관계 원칙은 자주와 혁명성이다. 이는 체제 전체의 핵심 구성요소기도 하다. 북한은 50년대부터 소련·중국을 수정주의 등으로 비판하며 일정한 거리를 둔다. 나아가 지구촌 전체의 혁명 종주국 행세를 하려 했고, 이는 한때 제3세계 나라들의 호응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컸다. 소련 경제의 정체·퇴조 조짐이 분명해진 1970년대 이후에도 혁명성에 집착함으로써 나라의 활력이 떨어지고, 미-중 수교라는 큰 흐름도 활용할 수 없었다. 대남 관계에서 각종 모험주의적 시도를 낳은 이런 태도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결과를 낳는다.
냉전 종식이라는 세계사적 변화 속에서도 북한의 대외 관계는 체제 유지 논리에 종속된다. 이때부터 본격화한 핵 문제는 그 산물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일정 부분 풀리면서 북한 대외 관계에서 실용주의 성격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경제를 가장 앞세우는 최근 김정은 정권의 모습은 북한 지배층의 사고가 크게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설적이게도 북한은 자주에서도 혁명성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지위는 미군이 주둔하는 한국보다 훨씬 취약하다. 북한을 자국 발전의 모범으로 삼거나 지원을 요청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 국가 경제의 핵심 목적이 ‘국민의 삶에 필요한 물자와 서비스를 원활하게 제공하는 것’이라 할 때, 지난 70여년의 북한 경제는 실패를 넘어 기이하기까지 하다.
현재 가치로 환산한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50년대 1천달러 수준에서 급증해 70년대 초에 3천달러까지 치솟는다. 이 시기가 사실상 북한 경제의 전성기다. 80년대까지 그 수준에 머물던 지디피는 90년대 중반 이후 1천달러대로 떨어져 지금도 2천달러를 넘지 못한다. 북한은 경제에서도 자주와 혁명성의 원칙에 따라 자립적 민족경제와 중공업·국방산업 우선 정책을 추구해왔다. 70년대부터 파산 조짐을 보인 이 원칙을 그대로 밀고 나간 것은 체제 우선 논리가 담론을 얼마나 제약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90년대의 비참한 고난의 행군 경험이 북한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역사의 역설이다.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장마당은 이제 500개까지 늘어나 나라 경제를 지탱하고 시장경제화를 이끈다. 장마당은 체제 논리를 뚫고 자라나 체제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됐다는 점에서 ‘담론 위의 담론’이기도 하다.
■ 북한은 위로부터 조직된 사회다. 유일지배체제를 뒷받침하는 수령론과 혁명정당을 자임하는 노동당이 지배한다. 촘촘한 감시·통제 시스템이 국민 생활을 제약하고 시민사회 발전을 막는다.
그 와중에도 느리지만 분명한 개방·개혁의 물결은 북한 사회를 아래에서 바꾸고 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성인이 된 ‘장마당 세대’가 주역이다. 북한에는 지금 500만대의 휴대전화가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관영매체가 독점한 여론 시장을 뒤집을 수 있는 규모다. 북한 정권도 주민들의 불만과 요구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북한 정권이 외부의 비판에는 귀를 닫고 경제 발전에 유달리 신경 쓰는 모습은 과거 한국 군사정권 시절을 연상시킨다.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은 열악하다. 지구촌 전체로 보면 최하위권이다. 북한 안에서도 이에 대한 자각이 없지 않지만, 체제 동요를 막아야 한다는 논리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북한 사회의 민주화도 한꺼번에 이뤄지기 어렵다.
■ 북한은 근대국가의 과제이자 담론의 핵심 의제인 지속적인 생산력 향상,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 평화·번영의 대외 관계, 다수 국민이 참여하는 활력 있는 체제 구축 등에서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일부 과제에서는 한때 성과를 냈으나 지속하지 못했다. 풀지 못한 과제는 모습을 바꿔 다시 나타나기 마련이다. 언젠가 통일될 한반도를 생각할 때 그 부담은 북한만의 것이 아니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