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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고이즈미 이후에도 일관성을

등록 2005-12-25 17:29수정 2005-12-25 17:29

박중언 도쿄 특파원
박중언 도쿄 특파원
아침햇발
한달 뒤면 도쿄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꼭 2년이 된다. 그 사이 한-일 관계는 멀미가 날 정도로 경사와 커브가 심한 롤러코스터를 탔다. 지난해 가장 많이 쓴 말은 ‘한류’, 올해는 ‘역사’다.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독도의 날’ 조례 파문으로 시작해, 교과서 검정·채택 공방을 거쳐 야스쿠니 참배 논란으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세 현안은 일제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의 굴절된 역사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했다. 그렇지만 사안별로 성격이 조금씩 달라 차별성 있는 정교한 접근법들이 요구된다.

독도 문제는 영토분쟁의 성격이 상당히 짙다. 일본 국민 대다수는 독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낮다. 그렇기 때문에 강공 일변도여서는 되레 반감을 사기 쉽다. 한국 국민들이 이 문제에서 극도의 분노를 표출한 데 대해 많은 일본인들은 아직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낮은 목소리로 일본인들을 설득하는 끈기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왜곡 역사교과서 채택 저지는 모범적인 대응 사례라고 하겠다. 정부와 한·일 시민단체들의 협조와 역할분담이 긴밀하게 이뤄졌다. 일본 사회의 거센 우경화 바람 속에 올해 왜곡 교과서의 채택률을 0.4% 수준에서 묶은 것은 이런 공조체제가 본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가장 혼란을 겪고 있는 사안이 야스쿠니 문제다. 노 대통령은 오락가락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했으나 3·1절 기념사 등을 통해 대일 외교의 기조를 확고하게 정립했다. 그럼에도 구체적 대응에선 혼선이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강행 뒤 그런 모습이 또다시 연출됐다. 우여곡절 끝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방일이 결정됐을 때 정부가 내세운 논리는 외교행위를 ‘필수’와 ‘선택’으로 나눈다는 것이었다. 군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구분의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한국 정부의 일관성 부족이야말로 일본 극우세력에겐 최고의 자양분이다. 이들에게 한국 쪽이 제풀에 지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외교카드로 활용한다는 식으로 공격할 빌미도 제공한다. 노 대통령이 ‘셔틀 정상외교’를 중단한 것은 ‘고이즈미는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고이즈미 이후’까지 내다본 원칙있는 대응이다. 아베 신조 관방장관 등 극우인사가 총리 자리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그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일본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 고위 공직자의 ‘역사인식 뒤집기’ 언동에는 쐐기를 박아야 한다. 그나마 부작용이 가장 적은 방법이 그들과는 상종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에서 총리의 참배에 대한 찬반 여론은 비슷하지만 극렬 지지파는 얼마 되지 않는다. 양국 관계는 이런 원칙적 대응의 바탕 위에서 틀을 짜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것이 ‘야스쿠니 고질병’의 재발을 막는 지름길이다.

총선 압승으로 고이즈미는 ‘제왕적 총리’로 변신했다. 그럼에도 양식있는 일본인들의 ‘쓴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시절 주중대사를 지낸 나카에 요스케는 24일치 〈아사히신문〉에서 야스쿠니 참배가 ‘마음의 문제’라는 고이즈미의 변명에 대해 “그렇다면 조용히 마음속으로 하면 될 일”이라고 공박했다. 외무성 사무차관·주미대사를 거친 구리야마 다카카즈 고문은 외무성 기관지나 다름없는 〈외교포럼〉 내년 1월호에서 “정부의 책임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것은 ‘대동아전쟁’을 긍정하는 신사의 역사관을 공유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며 참배 중단을 촉구했다. 이제는 한국 정부가 흔들림없는 태도로 이들에게 화답할 차례다.

박중언 도쿄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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