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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만열 칼럼] 기독교계의 시국선언, 자기개혁부터

등록 2019-09-26 17:37수정 2019-09-26 20:43

이만열
상지학원 이사장·전 국사편찬위원장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청문회를 계기로 대학가에서 학생들의 촛불시위와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그 무렵 기독교계에서도 7월 말부터 몇 차례에 걸쳐 ‘반문 시국선언’이 계속되었다. 이번 기독교계의 시국선언은 서울보다 영호남에서 먼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기독교계 시국선언 내용 중에는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기에 논의의 장을 넓혀보고자 한다.

지난 7월25일 부산·울산·경남지역 ‘기독교 지도자’ 656명이 문재인 정권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에 나섰다. 이어 8월11일에는 대구 기독교 지도자들이, 8월23일에는 호남지역의 목회자 341명도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 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고 9월9일 장관에 임명되자, 11일 호남지역 기독교 지도자 758명과 대구·경북·부산·울산·경남 기독교 지도자들은 일제히 긴급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문재인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방에서 시작된 이런 시국선언은 흔치 않았다.

한 언론이 요약한 바에 의하면 이들의 주장은, 문재인 정권이 헌법 개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를 무너뜨리고, 친북·종북을 넘어 김정은 정권을 대변하는 대북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대통령의 지휘 아래 육해공에 걸쳐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현 정권이 동성애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법을 제정하고 낙태금지법을 폐지하기 위해 각 지자체에 인권조례 등의 제·개정을 끊임없이 시도하여 헌법에 보장된 종교자유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기독교계의 전례없는 이 시국선언에 문재인 정부는 사실 여부를 떠나서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모처럼의 집단 시국선언이 실사구시에 바탕한 애정 어린 권고였다면 더 좋았겠다는 기대 또한 없지 않다.

이번 시국선언은 우선 그동안 기독교계의 난제였던 ‘정교분리’ 주장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독교계는 그간 ‘정교분리’ 이론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정치에 관여하는 데에 부정적이었다. 그런데도 국가조찬기도회나 기독교정당운동 등의 정치행위는 공공연했다. 돌이켜보면 한국사에서 종교와 정치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삼국·고려 시대에 불교는 왕실과 긴밀했고, 조선조에도 유교(종교라고 한다면)와의 관계는 심화·확대되어 백성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했다. 한말 기독교가 수용되었을 때 선교사들은 교회의 ‘비정치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3·1운동 등에서처럼 항일운동이라는 정치적 행위에 앞장섰다. 심지어 기독교인들의 신사참배 반대라는 종교행위도 국체를 부정하는 반정부적인 정치행동으로 해석되었다.

이승만 정권 때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교회는 부정선거 음모에 가담했다. 선거 때 어느 후보를 지지하라고 은근히 권유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교회의 비정치화’를 외쳤다. 유신정권과 신군부에 저항하면서 시국선언과 기도회에 나서면, 그것이 정치행위라고 싸잡아 비판하고 고립시켰다. 청와대를 출입하며 권력과 유착관계를 갖는 지도자일수록 사회정의와 부패척결을 외치는 젊은이들에게 정치참여의 딱지를 붙여 교회에서 내쫓았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격이었다. 그러던 기독교회가 최근 정권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가 소멸되었다고 언성을 높인다. 이율배반적이다. 아무리 정권을 비판해도 박해가 없다. 이런 걸 두고 민주화에 편승한 ‘무임승차’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영호남 지도자들의 외침은 정권을 비판한다는 의미에서 구약성경 왕상 22장[대하 18장]에 보이는 400명 종교인들에 대비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시국선언은 그동안 ‘정교분리’나 ‘교회의 비정치화’ 같은 기독교계의 해묵은 주장들을 뒤엎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영남권에서조차 정권 비판을 통해 정치행위에 나서게 되었으니 ‘정교분리’ 문제는 확실히 정리된 셈이다. 그것만 해도 성과다. 또 기독교 지도자들이 사회과학적인 안목을 넓혀 정치·경제는 물론 안보도 목회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으니 그 또한 의미는 크다. 이제 성속(聖俗) 이분법적 신앙 행태는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되었다.

선언을 다시 보자. 선언은 문재인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파괴하고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며, 대북정책에서 김정은에게 장단 맞추며, 한·미·일 삼각공조에 심각한 균열을 꾀하고 있다고 했고, 동성애와 소수자 차별금지법, 낙태금지법의 제·개정을 시도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헌법에 보장된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 선언은 문 정권의 자본주의 파괴와 사회주의 지향을 우려하면서 기독교는 자본주의를 선호하고 사회주의를 배척하는 것처럼 언급했다. 그러나 구약의 희년법이나 예루살렘교회 공동체는 자본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다. 대한민국 건국강령과 제헌헌법은 사회주의적 요소를 갖고 있다. 기독교 전통을 가진 서구는 사민주의를 통해 사회주의를 포용했다. 시국선언의 내용이 쾌도난마 식으로 정리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9월11일 영남 기독교 지도자들의 선언 중 다음 주장은 당혹스럽다. “어쩌자고 청와대의 국가경영 컨트롤타워 그리고 국정의 요직을 무자격자, 무능력자, 무경험자, 비전문가, 무법자, 범법자, 탈법자, 위법자, 법을 악용하는 자, 내로남불자, 불염치자, 편가르는 자, 사기꾼, 파렴치, 종북자, 사노맹주사파, 계급혁명론자, 사회주의자 등의 소굴로 만들고 있습니까? 그래서 이 나라 자유 대한민국을 정녕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로 전복시켜 북한의 김정은에게 바치려고 하십니까?” 이 말에 상식 있는 기독교인들과 일반 국민이 얼마나 동의할까. 주장의 과장성이 효과를 극대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언어는 인격의 얼굴이요, 존재의 품격이다. 이 주장에 십자군적 결기는 보여도 십자가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시국선언은 부메랑이 되어 교회로 돌아온다. 사회를 향한 이 선언은 오히려 교회 안의 심각한 부패들에 대한 청산의 시급성을 일깨워준다. ‘학력도 경력도 모호한 목회자’는 물론이고 지금도 진통을 겪고 있는 대형교회 세습과 금전 비리, 교회 지도자들의 윤리 문제 등에 대한 참회가 시국선언에 앞서야 했다는 자성과 비아냥이 엇갈린다. 지도자들은 이 시대의 오염원인 ‘~카더라’ 방송과 ‘카톡교’(카카오톡 종교) 및 ‘가짜뉴스’에 현혹되어서도 안 되지만, 거기에 중독된 교인들을 영성과 지성을 통해 선도해야 할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 정치권을 향한 시국선언은 이렇게 교회의 자기정화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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