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지난 5일 오후.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발걸음은 자석에 끌리듯 서울 서초역 네거리로 향했다. 1주일 전보다 늘어난 수많은 촛불이 하나가 되어 검찰개혁을 외쳤다. 하지만 분위기는 3년 전 촛불혁명 때와는 사뭇 달랐다. 2016년 ‘광화문 촛불’은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광장 민주주의’의 축제였다. 진보뿐만 아니라 중도와 합리적 보수까지 함께 촛불을 들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았다. 반면 ‘서초동 촛불’은 감동과 흥겨움이 크게 약화됐다. 3년 전 광화문에 모였던 촛불은 대부분 ‘검찰개혁’에 동의한다. 하지만 ‘조국 수호’에는 견해차가 큰 것 같다. 그로 인해 하나였던 촛불이 여럿으로 갈라졌다. 대학 친구들로 구성된 한 산행 모임은 2차 행선지를 자연스럽게 서초동으로 잡았다. 하지만 일부 친구는 불편하다며 아예 산행부터 불참했다. 3년 전 가족의 손을 잡고 촛불을 들었던 지인은 이번에는 ‘광화문 태극기’ 앞에서 찍은 사진을 카톡에 올렸다. ‘합리적 보수’를 자칭하는 또 다른 지인은 ‘서초동’과 ‘광화문’ 모두 싫다며 등을 돌렸다. ‘조국 논란’을 통해 진보의 가려진 ‘치부’가 드러났다. 겉으로는 사회 정의를 외쳤지만, 뒤로는 기득권·특혜·관행에 안주해온 삶이 충격을 던져줬다. 이를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진보는 없을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도 국민의 부정적 여론에 “기대와 달리 저와 가족의 문제가 (국민) 척도에 부족해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서초동 촛불’이 ‘조국 수호’를 고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과도한 검찰수사에 대한 반발과 이미 권력기구화한 검찰에 대한 불신이 너무 크다. 검찰개혁 무산에 대한 우려와, 여기서 밀리면 자칫 촛불정부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걱정도 많다. ‘서초동 촛불’에 합류하지 않은 진보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국 수호’가 진보의 ‘이중성’ 논란을 더 키워서, 자칫 진보의 도덕성까지 큰 상처가 날 것을 우려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을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참여연대가 조국 가족의 사모펀드 의혹에 침묵하는 것에 대해 “위선자”라고 질타하며, “조국이 물러났다면 진보의 분열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개혁론자인 박상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서울대 교수)도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전쟁 중에 아군을 향해 총을 쏘는 행위”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내부 비판을 막는 것은 장기적으로 독이 될 수 있다. 민주화 이전에는 민주·민권·민족을 위한 진보의 주장이 곧 정의의 외침이었다. 진보는 기득권도 과감히 포기했다. 경찰에 연행되고 감옥에 갇혔다. 대학과 직장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그럴수록 진보의 자부심은 더 단단해졌다. 군부독재 종식 이후 30년 세월 동안 진보도 어쩔 수 없이 사회 기득권 구조에 발을 담그게 됐다. 그사이 선출된 6명의 대통령 가운데 절반(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 진보 진영이다. 이제 진보도 혁신하지 않으면 수구로 전락할 위험성을 안게 됐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가 생전에 “이제는 진보파가 곧 개혁파가 아니다”라고 강조한 이유다. 보수는 ‘서초동 촛불’에 맞서 9일 다시 광화문에 모이기로 했다. 더는 장외 세 대결에서 큰 의미를 찾기는 어렵게 됐다. 다행히 검찰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임이 분명해졌다. ‘서초동 진보’도 이제 더 멀리 볼 시점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조국 장관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그만큼 고심이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보가 대통령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 진보가 계속 ‘조국 수호’를 고수한다면 전열 재정비가 어렵다. 지지층 눈치만 보다가는 자칫 전체 민심을 놓칠 수 있다. 무기력한 야당에 기대어 ‘총선 필승론’에 취하면 재앙을 맞을 수 있다. 보수 성향의 경제계 인사는 “진보가 내년 총선까지 ‘조국 수호’를 고수하면 아마 자유한국당이 가장 좋아할 것”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도 우병우 민정수석과 최순실씨를 미리 포기했다면 탄핵은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가 스스로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숙명이다. 진보의 자부심을 살리고, 분열을 막는 출발점은 검찰개혁과 ‘조국 수호’를 분리하는 것이다. jskwak@hani.co.kr
‘사법적폐 청산 범국민 시민연대’ 주최 7차 촛불집회가 9월28일 오후 서울 서초역 사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